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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Mar 29. 2022

빛바랜 청첩장들

소중한 지인들의 청첩장이 하나 둘 쌓이고 있는 것을 보니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왔나 보다. 나는 청첩장을 건넬 때의 그 설레는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괜스레 가슴은 두근거렸고, 얼굴은 화끈거리기만 했다. 매일 보는 사람에게 전하는데도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차고 넘치는 감정이 잘 주체가 잘 되지 않았다. 청첩장이 내 손을 떠나고 축하한다는 말을 기다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건넬 때의 설렘을 알고 나서부터였을까? 청첩장을 조심스레 건네받을 때 느낌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건네주는 그 사람에 기분을 알기라도 하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덩달아 좋은 기운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정말로 아끼며 지냈던 관계일수록 더 짙은 여운을 공유하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축하해 주고 싶었다. 그런 따스한 감정을 더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서 그런지 청첩장만 계속 만지작만지작했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청첩장은 빳빳한 종이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조심스레 전하는 그 사람의 좋은 감정과 내가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감정이 포개어지면서 새로운 개념에 추억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받았던 청첩장은 책상 서람 한편에 잘 정리해서 간직하고 있다. 몇 번이고 책상 서랍을 정리하면서도 버리지를 못했다. 빛바랜 청첩장도 펼처보면 각기 사연이 있었고, 행진할 때 그 사람에 행복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차마 내 이름 석자가 꾹꾹 눌러 담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반쪽 이름이 새겨진 봉투를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 없었다. 내가 마음이 여린 것일까? 아니면 청첩장에 너무 큰 추억을 담아 놓았던 것일까?




누군가는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청첩장을 쭈욱 쭈욱 찢어서 쓰레기 통에 버릴 수도 있다. 버린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왜 버릴 수 없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맨날 누군가에 치여 씩씩거리면서도 또 누군가가 행복해했던 순간을 담은 이 종이 조각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는 내가 행복하기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당신은 지나버린 결혼식 청첩장을 어떻게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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