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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Apr 03. 2022

시간을 느리게 걷는 아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에게 같다고들 한다.  벽에 걸린 시계가 이를 증명한다. 누가 보든 시간은 흐르고 있을 뿐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 이따금씩 올려보며 멈추지 않았음을 느낄 뿐이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이라는 물리학자가 상대성 이론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분명 물리 학계에서는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줬음이 분명하다. 따분한 식으로 증명된 부분이 어디서 그렇게 센세이션을 가져온 것인지 물리를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 투성이다. 살다 보니 삶을 뒤돌아보는 힘이 생기고, 살다 보니 삶이 주는 강약에 웃기도 울어도 본다. 살다 보니 좀 살아본 삶이라고 자신감도 붙곤 한다. 살다 보니 이런 상대성 이론이 이해가 간다면 거짓말인 것일까?


우리는 이따금씩 시간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점심시간이 오기 30분 전, 시계가 고장이라도 난 듯 착각하게 만들다가도 점심을 먹고 잠시 쉬어 보는 휴식시간은 누군가 시계를 앞으로 돌린 것과 같은 억울함에 시달린다. 이렇듯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양으로 흐르지만 이렇게 속도가 다를 수 있음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말했다. 나이는 시간의 속도라고, 정말이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공감되는 말이다. 이러다 정말 삶과 죽음 어디쯤 달리고 있을 열차가 당장이라도 캄캄한 종착역에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다. 이런 불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갔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시간의 흐름을 좀 더 더디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고민을 많이 해봤고, 몇 가지 깨달은 부분이 있어 적어 본다.


시간의 속도, 흐름은 지금껏 살다 보니 몇 가지 간단한 규칙에 의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또는 익숙한 것을 할 때는 시간이 빨리 간다.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나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때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 흘렀다. 나이가 익으면 익을수록 익숙한 일은 늘어만 간다. 웬만한 일은 최소 번씩은 겪어 봤고, 수십수백 수천번 해봤던 일도 생기게 된다. 이런 익숙함들이 모여 앞으로 생기게 될 일까지 예측하다 보니 모든 일은 자신에 손바닥 안에 있을 확률이 늘어난다. 당연히 우리 뇌는 시간에 흐름을 순탄하게 흘러 보낼 것이다. 말 그대로 연륜이 시간의 속도가 될 수밖에


나이를 먹어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시간을 새롭게 느끼게 해 준다. 피아노를 배워 본다든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본다든지, 항상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와의 시간을 소홀히 보냈던 시간을 가져본다든지, 배움에는 늦다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껏 배움에 삶이 지긋지긋해 보였고 졸업하기만을 바라며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선 호기심에 문을 닫았을지 모른다. 익숙한 것만을 하고, 먹고, 즐기면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게 잠시나마 멈춰 선 채 새로운 노랫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플랭크라는 코어 운동을 하며 1분이라는 미소 단위 시간이 얼마나 길 수 있음을 느끼며, 친구와의 소소한 삶에 대한 대화가 얼마나 빠를 수도 있음을 느끼며, 책이라는 것을 통해 시간에 단면을 알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이 멈춰 보이는 듯 한 이 새벽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느끼며 몇 자 적어봤다.


마냥 시간에 흐름에만 몸을 맡긴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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