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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Apr 04. 2022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사람들,,,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잘잘못을 따져야 할 때가 있다. 잘못에 대한 주관을 폭탄 돌리기라도 하듯 서로 떠밀기를 할 때가 일하기 싫은 이유 중 가장 부분을 차지한다. 그전까지 잘 지냈던 사이도 이런 이슈가 한번 터지면 서로 얼굴도 보지 않으려 한다. 이런 와중에 자신에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남에 잘못만을 크게 부각해서 다른 3자에게 말하는 사람이 너무 싫다. 싫다 못해 역겹기까지 하다.


하지도 않았던 말들, 아니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를 마치 어제 했던 말처럼 생생하게 재현하며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그들, 무책임한 말들이 무심코 쏟아져 나오는 그 입을 보고 있노라면 밥주걱으로 찰지게 한때 때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진리야 어떻게 되었든, 잘못을 누가 했든 엎질러진 물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수건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수건을 가져오는 것이고, 젖은 수건을 짤아낼  양동이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양동이를 가져오면 된다. 엎질러진 물부터 먼저 수습해야 하는 것이 일이 수순으로 맞다. 물은 엎질러져 종이는 다 젖어 내리고, 바닥도 흥건해지고 있는 와중에 잘잘못을 따지고는 자기는 쏙 빠지는 사람이 있다. 그러곤 강 건너 불구경하 듯  상황을 지켜보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희열감마저 느끼게 다. 나만이 몰래 간직하는 관계라는 노트에 삭제해도 되는 사람이니 오히려 홀가분해 지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모든 것은 다 기억할 수 없다. 분명 그 사람이 생동감 있게 전하는 과거에 사실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기억조차 못하는 나로서는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 나의 잘못으로 인정해 버리고 만다는 것이 문제다. 나로 인한 문제가 생기면 그냥 수습하면 된다. 내가 조금 더 늦게 가면 되고, 내가 조금만 더 고생을 하면 금방 수습할 수 있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심어준 죄책감은 머릿속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왜 그랬을까? 설령 내가 한 행동이라도 어느 정도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터인데, 차 떼고 포 떼고 전해지는 팩트는 내 자존감을 낮추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을 겪다 보니 그런 사람들을 피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똥을 피하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최대한 말로 하는 대화를 피하게 되고, 일적으로 마주해야 될 때면 으레 문자나 메일로 주고받자고 말한다. 이게 나름에 최선이라 판단했다. 시간이 지니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처럼 어떤 문제를 겪었던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만을 보고 피한다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는 저 사람에게 손가락질당하는 사람이 자신이 될 수 도 있음을 알았던 것일까?




주변에 인간관계가 좋고 그릇이 크다는 사람이 몇 있다. 단지 성격이 좋아서 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누명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주변에 있어 보니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위기가 찾아오면 빛이 났던 것 같다.


곤경에 처하거나 위기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수건을 가져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닦아낸 그 사람, 그런 행동이 전혀 인위적이지 않고, 남을 위해 한다는 느낌 없이 자연스러움이 배어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진정 그릇이 크지 못한 사람은 억울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문제가 터져도 결국에는 누군가를 생생한(?) 과거의 현장으로 데려가 제물로 받칠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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