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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Apr 24. 2022

나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살면은, 이렇게 계속 살면은 점점 더 나아지는 줄 알았다. 삶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묵묵히 일만 한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고, 어른들에 말씀만을 따라간다면 어른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지금 느끼는 삶에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어제보다 손가락 한마디만큼에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 믿어 왔다. 어제 보다 더 나은 오늘, 그 믿음 하나만으로 지금껏 버텨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니 거짓 속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것 같던 믿음만 가지고는, 세월에 정면으로 맞서 버터낼 맷집만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어른들이 원했던 책임감과 듬직함은 나를 위한 덕목이 아니라 남을 위한 덕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밀려오는 배신감, 허탈감 같은 감정들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이런 감정은 혼자 감당하면 할수록 쉬이 잊히는 감정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고 참으면 참을수록 더 나은 내일을 가져오지 않을뿐더러 더 나은 나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껏 느끼고 참아왔던 감정에 선들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못했던 내가 하나둘씩 내려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직 지쳐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더 큰 힘으로 내가 만든 틀을 깨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고 새로운 삶을 살아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어쩌면 나는 어렸을 적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과학자나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심어준 생각이 아직도 무의식 중에 나를 통제하고 억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아무나가 되고 싶다는 것을 바랄 뿐이다. 단지 나만을 위한 아무나가 말이다. 어른들이 심어준 돌멩이를 나 자신이라는 땅속에 키우며 싹을 틔우길 기다렸던 세월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이것조차도 나를 위한 인고의 시간이라고, 다 나은 나를 위한 것이라고 바꿔 생각할, 착해빠진  "나"라는 존재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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