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 비 그리고 바람 May 07. 2022

3만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오랜만에 돌잔치를 다녀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무료하고 지쳤던 삶 속에 핏기가 도는 듯 했다. 역시 나는 혼자 끙끙 앓으며 지금껏 힘들었던 이유를 자신에게 돌리며 더 나은 나를 약속하는 것보다는 관계에 대한 아픔을 겪더라도 사람들 속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지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어색, 이색 체험에 힘껏 들떠 있던 나였다.


그러던 중 MC가 흥겨운 박자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고 문득 예전에 잊고 지내던 어떤 감정이 떠올랐다. 당시 느꼈던 불쾌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과거 나는 어느 한 친한 친구 돌잔치를 가기 위해 100일이 겨우 지난 아기와 와이프까지 대동하며 힘든 발걸음을 한 적이 있었다. 100일이 갓 지난 아기를 데리고 어딘가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고 와이프도 극구 말렸지만, 제대로 축하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참석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힘듦과 뿌듯함을 바꿔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 딸 돌잔치가 다가왔다. 막상 주변 사람들에게 돌잔치로 초대를 하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생일일 뿐인데, 단지 생애 첫 생일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싶었다. 어쩔 수 없이 남들 다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했고 지인들을 초대를 했다. 당연히 그 친구도 초대했다. 그 친구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올 것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기쁜 얼굴로 맞이해 주겠노라고 다짐하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돌잔치가 시작되었지만 그 친구는 전화도, 모습도, 그 어떤 성의도(금전 포함) 내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나는 모든 일을 까맣고 잊고 지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순간 당시 어떤 급한일이 있어서 돌잔치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미안한 마음에 전화한 줄 알았다. 흔쾌히 용서하고 받아주고 농담이라도 하겠다고 반갑게 전화를 받았지만 이내 돌아온 것은 실망뿐이었다. 통화 내용인즉슨 오랜만이라 하면서 연락도 없이 뭐하고 지내냐면서 안중에도 없는 안부를 묻더니 자신을 좀 도와달라는 것이 내용에 전부였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며 사실대로 다 말하고 싶었지만 속이 좁다는 소리나 들을까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놈도 친구라고,,, 또 난중에 얼굴이나 보면 말해줘야겠다.’라고 호구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부탁까지 다 들어줬다. 그러던 중 내가 준 도움에 손길이 달달하기로도 했는지 그 후로 자주 연락이 왔고, 서로 아이에 대한 안부를 묻다가 속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야 너 둘째 아직 없지? 딸은 돌 지났냐?

“둘째는 없지, 그리고 돌은 한참 지났지~”

“섭섭하네 넌 왜 나한테 연락 안했냐?”

“응? 연락했는데? 전날에도 톡 했었고,,, 너 그날 많이 바빴나 보던데?”

“진짜? 미안하네,,, 그날,,, 음,,, 내가 바빴던 거 같아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것 아,, 정말 미안하다 야”


나도 당시 느꼈던 불쾌한 감정은 잊고 있던 터라 별로 개의치 않을 수 있었기에 무덤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 친구도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내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해줘서 그런지 놀란 듯하면서도 별일 아닌 듯 다음 대화를 이어 나갔다. 결국에는 또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그리곤 친구 좋다는 말에 현혹돼서 호구 짓을 또 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있는 곳으로 무조건 오란다. 난 또 도와줘서 고맙다고 커피라도 한잔 사려는 줄 알았다. 근데 자기가 있는 곳으로 내가 왜 가야 되지? 하면서도 속는 셈 치고 가봤다. 나를 10분 정도 기다리게 하더니 자신에 차로 나를 데려갔다. 몇 번이나 물어도 대답하지 않던 그 친구에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먼가 엄청난 선행이라도 하는 것 마냥, 웃음을 머금은 입술과 눈,,,,,, 그리곤 이내 뒷트렁크를 열어 보인다.


“야 이거 뭐야?”

“너 너네 애 돌잔치 내가 바빠서 못 간 게 미안해서 선물인데 거금 주고 사봤어”

“뭐 이런 걸 다 사고 그러냐,,,, 1년도 넘었는데”

“그래도 뭐 겸사겸사 사봤어, 또 뭐 내가 부탁할 일 생길 줄 누가 아냐?”

“,,,,,,,,”


내가 기대가 큰 탓일까? 인간이 덜된 탓일까? 난 순간 모터로 가는 유아용 전동차인 줄 알고 흠칫 놀랬지만, 페달이 달린, 덩치만 큰 네발 자전거란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받아온 네발 자전거는 검색 결과 3만원 짜리였고 한 달도 되지 않아서 고장이 났다. 부피가 크고 폐기 또한 쉽지 않아 결국 돈을 더 주고 버려야만 했다.


선물을 받았음에도 가치가 낮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가격부터 찾아보고 있는 나의 야만성과, 추잡함에 몸서리 쳐졌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 가지고 그렇게나 생색을 냈던 그 친구에 대한 인성도 다시금 되짚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년이 훌쩍 지나버린 돌잔치에 대한 미안함은 3만 원으로 돌아왔고, 나의 미숙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 친구를 3만으로 보게 되었다. 내가 도와준 것들이 그 친구 기준으로 몇 천 원 될 터이니 3만 원이나 받아간 내가 원망스럽겠지?


하지만 더이상 정이 안가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잘 살아라 친구야~



작가의 이전글 순간 느끼는 감정에 목숨 걸 필요 없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