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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n 02. 2022

당신이 체중감량에 실패하는 이유

소중한 당신

"요즘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지셨어요? 따로 운동하는 거 있으세요?"

"네? 제가 살이 빠졌어요?"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통화로만 안부를 전하던 협력사 직원분과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건네받은 첫 대화였다. 나는 많이 놀랐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한참 동안 아랫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냥 뒀으면 체중 감량에 대한 영웅담을 말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다이어트는 20년째 진행 중이며 식사량을 줄인지는 10년이 넘었으며 저녁마다 하는 운동은 2년이 다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아직도 몸무게가 줄지 않고 있어서 누구에게도 지금 체중조절 중이란 말을 하지도 못했다.


몸무게라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조금만 먹어도 먹는 양에 2배로 체중이 불어나는 듯했고, 죽어라 운동해도 흘린 땀에 고작 반 정도만 빠지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조금만 먹고 그렇게 운동해도 항상 몸무게는 같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질량 보전에 법칙은 절대 불변에 진리라는 것에 또 한 번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살을 정말 한번 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 사진을 우연찮게 보다가 풋풋한 나의 모습에서 갸름한 턱선과 홀쭉한 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어렸던 것도 있었지만 체중이 적게 나가서 그런지, 실루엣이 좀 더 사람 같아 보였다. 얼른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웬 돼지 한 마리가 거울 속에서 요리조리 턱선을 보고 있더라,,, 순간 머릿속에서 쿵 하고 울림이 들렸다.


'앞으로 이렇게 나약한 정신력으로 산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이런 모습을 다시 가질 수 없겠구나'


그때까지는 몰랐다. 정말로 굶는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밥을 먹지 않고 굶으면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좀 넘게 굶었을 뿐인데,,, 죽을 것처럼 머리가 아파왔고, 배가 너무 고파왔다. 옆구리에 접혀있는 살들은 아직 그대로일 뿐인데, 몇 주일을 굶어도 문제없을 것처럼 늘어뜨려 놓고도 정말 이렇게까지 엄살을 부려야 하나 싶었다. 정말이지 내 몸이 너무 야속하기까지 보였다.


그런 야속함이 무르익자 배신감으로 변하더라. 지금껏 나를 등쳐먹고 살 찌운 나 자신에게 뭐라도 제재를 가하고 싶어 졌고 이런 감정들이 모여 독기를 품게 되더라. 정말이지 나와에 타협이란 없었다. 정확한 시간에 정량으로 밥을 먹었고, 시간이 지나면 절대적인 단식을 유지하였으며, 집에 와서는 머리가 터질 듯한 두통을 달래며 운동까지 해냈으니 말이다. 힘들어하면 할수록 더 독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나 할까?




처음에는 배고픔으로 나를 꼬시더라. 즐거움, 기쁨, 행복함, 불행함, 이런 오감을 나타내는 표현들은 다 감정을 타고 나타난다. 기쁘면 웃음이 나기도 하고, 슬프면 눈물이 나듯이, 거부할 수 없는 감정 선율이란 것이 있다. 하지만 배고픔이란 것은 감정일까? 상태일까? 배고픔은 모르긴 몰라도 슬픔, 불행함, 짜증 같은 구체적인 감정에 부유물이 아닐 것이다. 배가 고파서 오열을 한다거나 배꼽을 잡고 웃지는 않으니 말이다. (물론 너무 배가 고파서 아사 직전이라면 감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배고픔 따위는 가소롭게 느껴졌다. 그냥 갓난아이가 자다가 깨어났을 때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대수롭지 않게, 개무시했다.


배고픔으로도 내가 꼼짝 하지 않자 이번에는 두통을 일으켰다. 조금이라도 머리를 들거나 걸으면 머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계까지 오더라. 머리통 안에 뇌가 굴러 다니는 기분이라 해야 하나,,, 분명 이 녀석이 하다 하다 안되니깐 마지막으로 발광하는 단계라 생각했다. 난 이미 충분히 독해져 있었기에 이런 두통마저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는 독기가 있었다. 아마도 내 몸이 적잖게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렇게 몸은 혹사하며 동일한 패턴으로 생활한 지 정확하게 2주가 지났을 때, 더 이상 배고픔도 없고, 머릿속 두통도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나를 이겼다는 생각에 얼마나 큰 희열이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런 찰나에 그 협력사 분의 내 몸 근황까지 말해주니 어찌 좋지 아니하겠는가?


                    



 자신은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알고 있다.  어떤 떡밥을 던지면 내가 덥석 물지, 어느 정도만 버티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것인지를 알고  있다는 말이다.


항상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말 중에 아주 뻔한 말이 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라고. 어쩌면,,, 정말로 나에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를 이기는 것이야 말로 다이어트뿐 아니라 모든 이를 이길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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