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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n 05. 2022

비가 오면은요 생각납니다.

소중한 당신

 아침부터 비가 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빗물이 유리에 부딪치는 소리, 쇠붙이에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은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는듯한 기분이 든다. 무심한 듯  들려오는 불규칙적인 리듬과 큰 호흡과도 같은 일정한 패턴 속에 포개지는 화음에는 어떤 힘이 숨겨져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추적추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추적,,, 추적,,, 무언가 표현할 방법이 없는 빗소리와 반복되는 다시 듣기 감성을 이어 붙인 듯했으니 말이다. 이왕이면 '추적추적추적'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자연 그대로인 빗물과, 인공 그 자체인 것들과 부딪치는 소리가 어쩜 나를 이렇게도 적셔주는 것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귀 기울이며 쉬어도 된다는 말을 속삭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비가 오기 직전에 맡을 수 있는 마른행주 같은 냄새와 빗물이 나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느낌, 물방울이라는 것이 몸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을 나는 잘 안다. 이상하게도 비가 오는 날 과거에 이러한 오감들이 다시 되살아나, 그때에 나는 내가 된다.


기억에 끝자락에 다다르면 마냥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은 없다. 외로웠거나, 지독하게 외로웠던 기억뿐이다. 기분이 그냥 그랬다가도 비를 맞아서 외롭다고 느꼈던 것인지, 항상 비가 오는 날에는 그냥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꽃망울을 틔우기 위해 하염없이 빗망울을 기다리던 풀들처럼. 그동안 쌓아 두었던 슬픔이 넘쳐흘러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추적임 속에서, 티 나지 않게 마음껏 슬퍼해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비를 기다리는 나와 풀은 이미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리는 순간이 외롭고,

지독하게 외로워도 참는 것처럼,

비는 반드시 온다는 것을 알기에,

꽃은 반드시 필 수 있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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