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트리비아, <김밥> 5/13 출간
5월 13일 출간하는
저의 5번째 책 <김밥>에 대한
출판사 서해문집의 서평을
소개해 드립니다.
사람 손으로 만드는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김밥만큼은 더더욱 그렇다.
김밥을 마는 데
20년, 30년을 바친 장인이라 해도 그렇다.
김밥 속에 들어가는
(적게는) 두세 가지에서
(많게는) 대여섯 가지 재료를
정량에 맞추는 것도,
매번 밥을 똑같이 짓는 것도,
똑같은 손아귀 힘으로 김밥을 말아 누르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김밥은,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몽땅 털어 넣은 비빔밥처럼,
어떤 것이든 재료가 될 수 있고
또 어떤 식으로든 넣을 수 있다.
오이 대신 고수를 넣을 수도 있고,
달걀지단을 통통하게 부쳐 넣을 수도 있다.
시금치를 데쳐서 넣을 수도 있지만
볶거나 튀겨서 넣을 수도 있다.
노란색 슬라이스 치즈 대신
모차렐라 치즈를,
리코타 치즈를,
크림치즈를 넣을 수도 있다.
참치에서부터
햄, 김치, 연어, 장어, 새우, 돈가스, 베이컨, 제육, 떡갈비,
닭가슴살, 대체육에 이르기까지,
말하자면 김밥은 온갖 식재료가 돌돌 말린 작은 우주다.
그렇게 온갖 식재료가,
그것도 각각을 조리한 형태로 들어가
손이 많이 가는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저렴하고 일상적인 음식이
바로 김밥이다.
한국에 치킨집이 하고많다지만
김밥을 파는 곳은 더 많다.
편의점에서도 팔고,
분식집에서도 팔고,
당연히 김밥 전문점에서도 팔고,
휴게소, 등산로 입구, 관광지, 전철역 간이음식점 등
정말이지 세상 오만 데서 김밥을 판다.
소풍을 갈 때나 등산을 갈 때
김밥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저녁에 무언가를 차려 먹기 귀찮을 때나 야근할 때
김밥 한 줄 사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까?
컵라면을 살 때 삼각김밥을 같이 살까 말까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하지만 그렇게 저렴해지고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김밥은 어쩐지 찬밥 신세가 된다.
김밥천국에서 김밥 한 줄만 시키면
왠지 눈총을 받을 것만 같고,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을 사 먹으면
한 끼를 대충 때운 기분이 든다.
밥이 들어갔으니 밥을 먹긴 먹은 건데,
영 밥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소풍날이면 도시락 통에 어김없이 담겼던 김밥은
이제 상할까 봐 망설여지는 음식이 됐고,
집에서 직접 싸 먹는 김밥이라는 건
거의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김밥은
제 역사를 통틀어 전성기를 맞은 것처럼 보인다.
김밥 메뉴만 열 가지가 넘는 김밥 전문점들이 등장한 한편,
김밥이 한 줄에 1000원이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기본 김밥이 2000원인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참치김밥 한 줄에 4000원,
무언가 값비싼 재료가 들어갔다면 5000원이 넘어간다.
‘다른’ 김밥 하면 충무김밥 정도만 떠올랐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달걀지단이 빽빽하게 들어간 교리김밥에서부터
통통한 달걀지단에 당근이 빽빽하게 들어간 전주 오선모김밥,
전복 내장을 비빈 밥 사이에 네모난 달걀지단을 끼워 만든 제주 김만복김밥 등
지역마다 유명한 김밥집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는 건
김밥을 좋아하거나 즐겨 먹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뜻일 테고,
당연히 김밥에 대해 할 얘기도 많지 않을까?
이 책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물론 김밥 레시피나 맛집을 소개하려는 건 아니다.
‘김밥’이라는 음식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를 통해
사회·정치·경제·문화를 두루 살펴보는,
김밥에 관한 일종의 트리비아 모음집이다.
김밥은 어쩌다 소풍 음식의 대명사가 됐는지,
김밥에 소시지나 치즈가 들어간 건 언제부터인지,
김밥의 원조는 한국인지 일본인지,
김밥천국은 어쩌다
간판도 메뉴도 제각각인
프랜차이즈 아닌 프랜차이즈가 된 건지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김밥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이
속재료가 투박하게 튀어나온 ‘꼬다리’에 있듯이,
김밥 옆구리로 삐져나온 이 이야기들을
맛있게 즐겨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