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가실 듯 말 듯 애태우던 9월 초, 그렇게 걱정하던 면허시험을 운 좋게도 한 번에 합격한 날 기분이 좋아 엄마에게 자주색 국화 화분을 건넸다.
꽃이 금방 시드는 게 아쉬워 다발이 아닌 화분으로 구입했지만 그 마저도 오래가지는 못 했다. 아무렴 꽃이니 당연히 시들기 마련이겠지 하며 다시 또 피우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한숨을 푹 내쉬다 지나가는 말로 꽃들도 다 듣고 있다고 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떠올라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아쉽지만 네가 다시 꽃을 피워줄 걸 안다고. 기다릴 테니 한동안은 푹 쉬라고.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무슨 꿍꿍이였는지, 엄마가 가지만 댕강 남겨놓고 시든 꽃의 머리 부분을 전부 정리한 게 아닌가. 나는 조금 잔인하게 느껴질 법한 모습으로 잘린 가지만이 가득한(국화였다기엔 너무 볼품없는) 국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참. 괜히 우리 집으로 와서...
꽃나무가 살아남기 힘들기로 유명한 엄마 손에서 두 번이나 무참히 지는구나.
엄마는 웬일인지 발끈조차 하지도 않으며 여유롭고 담백하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또 꽃 피울 것 같아서 자른 거야.
두고 봐 어디.
뭔가 무서웠다. 꽃을 두고 실험하는 괴짜 박사 같기도 한 그녀의 말투가.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꽃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의 무게에 감정이입이 되어 꿋꿋이 기다려보기로 했다. 씁쓸하게도 한 철만 피어있기에는 너무 단단한 줄기와 아름다운 색감을 가지고 있었다.
두어 달쯤 지났을까.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 인센스에 불을 붙이려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는데 웬걸. 잠시 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 화분 속 줄기들이 자줏빛 꽃봉오리를 틔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꽃망울이 무려 세 군데나 올라온 것을 보고 이상하게 울컥해 가만히 그 꽃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손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든데 다시 꽃을 피우다니. 엄마의 손길에 죽어나간 꽃나무가 어찌나 많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꽃무덤손'이란 억지스러운 별명은 꽃나무를 살려두지 못하는 엄마에게 장난스레 붙인 거지만, 전적이 다소 화려했던 엄마의 이력 때문에 엄마 역시 이를 부정하지는 못 했다. 특별한 관리 없이도 오래 산다던 산세베리아는 뿌리가 썩어 죽었고 키우는데 큰 무리가 없다던 스킨답서스는 매일 잎이 조금씩 메마르다 그 길로 잠잠해졌다.
관리가 까다로워도 죽었고, 관리가 필요하지 않아도 죽었다면 원인은 자연스레 엄마에게 있는 것이었다. 굳이 원인을 살펴보자면 엄마의 과도한 관심과 애정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봤다. 까다로우면 까다로워서 애정을 쏟고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절로 마음이 가니 신경을 쓰고. 무엇이든 '적당히'가 중요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적당한 지점을 놓치기 마련이므로.
이러나저러나 역시 엄마는 엄마였다. 엄마 말대로 꽃은 두 달만에 조심스럽게 봉오리를 내밀었다. 찾아보니 소국은 원래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강한 편에다 한 철 피고 또 다음 한 철을 피고 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지만, 아무래도 잔뜩 움츠러들었던 내게 엄마가 말하곤 했던 것처럼 국화에게도 끊임없이 말을 걸었을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모든 건 다 때가 있는 거야. 지켜봐.
어찌 되었든 뿌리만 썩지 않고 단단하고 곧게 버텨 낸다면, 얼마 간 세월을 돌고 돌아 새로운 꽃을 피우리라. 꿋꿋이 다음을 기약해 준 화분에 사랑을 담아 나 역시 한 마디를 건넸다.
-나도 불안이랑 상념을 좀 잘라내고 나면 다음이라는 시간을 좀 더 기대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