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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준희 Dec 22. 2021

어떤 마음

12.20


어떤 마음은 눈처럼 희고 물러서 돌아서는 찰나에도 쉽게 편입되지만 어떤 마음은 비처럼 대체로 젖기만 하다가 웅덩이를 만들어서 돌아서기도 전에 쉽게 튕겨져 나온다. 끈끈했던 결정체가 모습을 탈각해 버리고 물이 되어 축축한 언덕을 쌓아 올릴 때까지. 내 마음의 날씨 칸에는 언제나 긴밀히 편입되지 못한 채 흘러넘치는 웅덩이 속에서 침범을 밀어내는 방울들이 잔류하고 있었다.




  첫눈이 오기 며칠 전부터 이미 내 마음은 소복이 쌓인 눈 위에 푹 잠긴 발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연말 분위기가 감돌면 으레 지난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새 것을 구매하는 것처럼, 한 해동안 정리하지 못한 기억들이 중구난방으로 머릿속에서 요동치는 것을 애써 돌려막았기 때문이다. 구태여 날짜를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작년 이맘때 즈음 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고, 이번 주 중에 그 뒤로 1년이 되는 날이 있다는 정도 알고 있었다. 그가 보고 싶은 것은 아니나 다른 연애를 시작하고 싶을 만큼 지난 감정이 정리되지는 않았다. 아주 가끔 말이나 기억에 의한 것보다 먼저 체감하게 되는 것들 앞에서 그때의 우리가 그리워지기도 한 탓인지, 나는 해가 질 때 그날의 일을 더 이상 떠올리지 말자는 다짐을 하듯 올해가 가고 난 뒤 더는 그를 추억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간 눈보다 비를 더 반겼었는데, 막상 펑펑 쏟아지는 첫눈 장면을 맞닥뜨리니 나도 어느새 아이의 눈을 하며 반기고 있었다. 유독 천천히 흩날리는 결정체의 모양새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주변에 모든 풍경과 기운이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2주 만에 본가로 올라온 둘째와 함께 가슴속에서 동면을 취하던 산타를 깨워 첫눈을 맞기로 했다. 내가 사는 종로의 산동네는 이미 강원도의 스키장 풍경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썰매 하나가 손에 들려있다면 그대로 몰고 내려가도 될 만큼 많은 눈이 쌓였다. 나와 둘째는 나란히 버스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전 남자 친구와 함께 스키장에서 스키를 탄 후 정상에서 마신 따뜻한 코코아의 맛을 떠올렸고, 쌓여있던 기억들을 차츰 순환시켰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강원도의 공기와 엇비슷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연신 걷다가 새로 생긴 한옥 카페에 들어섰다.


   위스키를 곁들인 오후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검색하다 찾아갔으나, 고작 네시 반 정도의 시간이었기에 혹시 몰라 주류 주문도 가능한지 사장님께 여쭈었다. 사장님은 당연히 된다는 말씀과 함께 언제든 오시면 가능하다고 친절히 응대해 주셨고 머쓱하게 여쭙던 나는 금세 또 신이 났다.  발렌타인 12년을 스트레이트로 한 잔씩 비우면서 창 밖 기와지붕에 쌓인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 카페에 오면 꼭 위스키 두어 잔과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시키겠노라 다짐하면서도 나는 그와 자주 가던 바의 축축한 습도를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그는 참 다정하고 사려 깊어서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까지 두루 살폈다. 나보다 먼저 내 동생들의 안부를 물었고 엄마와 내가 울적해질 날짜가 다가오면 먼저 데이트 약속을 잡아 좋은 곳에 데려가 주었다. 나는 훌쩍 흘러버린 시간만큼 적당히 미화된 그의 장점을 매몰차게 접어내기 위해 그 다정함을 벗어나야 했다. 엠비티아이의 특성도 그렇지만 나에게는 지독한 의심 병자적 면모가 있었다. 그의 좋은 점을 상기하기 이전에 음모론을 제기해가며 그를 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가 내 가족에게 다정했던 만큼 나 역시도 그의 가족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는 내가 무언가를 하려 할 때마다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마지막까지도 말을 아꼈던 그의 모습에 실망한 내가 만들어낸 오류일지 모르나, 금세 그걸로 꼬투리를 잡아 의심의 불씨를 키워냈다. 그가 자신의 가족에 관한 어떤 부분을 내게 숨기고 싶어 한다는 의심을 기정사실화 하여 덧붙임으로 그의 호의를 가렸다. 둘째는 또 시작이네 하며 정신 차리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나는 괜스레 둘째의 반응에 이끌려 또 다른 음모론을 제기했다. 대부분이 나의 부끄러운 상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가치관과 신념 그리고 취향이나 성격까지 모든 부분이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여겼던 나와 그는 결국에 말로써 답을 들어야만 하는 사람과 끝까지 말을 아끼던 사람으로 끝이 났다. 다소 오래 걸렸던 시작에 비해 끝은 너무나 시시했다. 대부분의 관계가 그렇듯 서로에게 맞춰줄 여력이 없어지자 우리는 차라리 홀로인 것이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언제까지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나는 더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그의 여자 친구로서 감당해야 할 문제보다 내가 나로서 감내해야 할 문제들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의 마지막 말에 그 역시 별다른 대답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이별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그는 책임감이 유별난 사람인 걸 증명이라도 하듯 내게 함부로 행동하지 않던 것을 철칙처럼 지켰고, 나는 자존심을 지키느라 이를 악물고 내 일에 집중하기 위해 버텨냈다. 돌아선 뒤에는 몇 배로 차가워져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술에 취해 통화 버튼을 누르거나 미친 척하고 안부를 묻는 등의 철 지난 미련 놀이를 하지 않았다. 지난 해 잠깐 헤어져있던 기간에 그가 남겼던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이따금씩 상기될 때도 있지만 되돌리고 싶을 만큼 달갑지는 않았다. 이기적인 생각들로 기억을 뒤덮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둘째에게 또 한 번 털어놓고 나니 마음은 가벼워졌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자고 다짐해보지만 언제 다시금 침범할 어리석은 생각인지, 나 역시 알 수 없다.



   집으로 돌아와 대강 있는 재료로 만든 국물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들이켰다. 결국에 오래된 사랑과 쿨하게 작별하고 다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어른의 모습을 장착하지 못한 채  6년 속에 잠자코 있던 우리를 한 번 더 상기한 셈이다. 구질구질했다. 차츰 나아질 이별 병이겠지만 성격이 조급한 탓에 잊는 것도 속성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비처럼 젖기만 하는 내 마음이 언제쯤 튕겨 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누군가에게 스며들 수 있을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눈처럼 스르르 녹아 편입될 마음이 생기기까지는 아무래도 쌓인 마음의 웅덩이를 조금씩 덜어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 크리스마스만큼은 눈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추운 걸 싫어하는 편이지만 이상하게 올해 겨울은 추울수록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해진다. 누군가로 인해 좋아진 계절이 아니라 온전히 나로서 그 계절만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겨울이 된 것 같아 한결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전에는 온전히 홀로 설 수 있을 때 나와 내 연애가 맞물려 함께 빛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헤어짐으로써 홀로 서기 위해 애쓰던 날들을 명목상 미화시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명목이란 것이 환상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그런 의미로 나는 지난 사람은 새로운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내가 이전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아주 조금씩 가슴에서 멀어질 뿐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처음의 마음이 그때의 마음 그대로 연결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 다른 걸 다 떠나 2022년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퍼하기보다 기뻐하고 여러모로 지치고 외로웠던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여유롭고 평화로울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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