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보다는
삼촌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욕실을 리모델링 해주셨다. 모든 것이 새것처럼 변해있는데 샴푸가 놓일 곳엔 샴푸가 없었고 바디로션의 기한은 19년에 머물러있었다. 샴푸가 어디있는지 못 찾겠다는 우리의 질문에 할머니는 욕실안 거기에 있다는 말을 반복하셨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샴푸가 보이지 않아 우리는 말없이 선반 위에 있던 바디로션으로 머리를 감았다. 바디로션으로 머리를 감은 건 처음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최근에 만난 할머니는 눈도 많이 어두워져 있으셨고 가끔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곤 하는 치매초기 증상까지 보이셨다. 몸이 쇠약해지고 깜빡하는 증상을 앓으시면서부터 유독 할아버지에게 의지하시는 할머니는 이전의 여장부같은 느낌을 완전히 초기화한 것처럼 귀여운 투정쟁이가 되어 있으셨다. 할머니는 엄마와 다르게 풍채가 있으신 편인데, 젊었을 적 미용협회 회장을 하실만큼 단단하고 멋있는 여성의 삶을 사셨지만 바쁜 만큼 허기를 채울 시간이 모자라셨다고 한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실 때면, 단팔빵을 무더기로 한 봉지씩 들고 들어와 대강 때우신 뒤 노곤해져 바로 잠자리에 드셨다.
이후로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하신 할머니는 그 때문인지, 유독 먹는 것과 관련해 민감하게 반응하시며 나는 밥을 잘 안 먹어, 고기도 별로 안 좋아해, 그냥 윌이나 두어개 먹으면 그게 그렇게 배가 불러. 라고 하시면서 먹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한 소리라도 들으신 듯 눈치를 보며 같은 말을 반복하신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보며 윌이 당분이 많아 얼마나 살찌는데 그걸 하루에 세 개씩이나 드시냐고 잔소리를 하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드시고 싶으신 걸 다 드실 때까지 말없이 미소를 머금은 채 귀엽게 바라보신다.
할아버지 댁에 방문할 때면 습관처럼 역 앞 풍년제과에 들러 땅콩센베를 구매하는 우리를 발견하곤 한다. 전주에 여행오는 사람들이 찾는 그 땅콩센베를 웃기게도 전주 사람이신 우리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도착하자마자 가족들과 둘러앉아 과일과 센베를 먹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센베를 집을 때마다 봉투 안에 있던 센베를 하나 둘 빼내시더니 결국엔 한 봉지를 전부 접시에 옮겨담으셨다. 우리는 할머니께 저희는 그만 먹어도 돼요. 두 분 드셔요. 라고 전했지만 할아버지는 내내 할머니가 옮겨담는 센베를 하나 둘 집어 입으로 가져가셨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익숙한 설렘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센베를 집으실 때마다 하나씩 꺼내 옮겨두기를 반복하시던 할머니를 말없이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이가 드는 건 나에게 전념하는 시간을 지나 내 주위를 염려하게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곳곳에 빈틈이 생기는 것은 종종 놓칠지언정 되레 주변의 틈을 먼저 알아보고 채워주려하는.
할아버지 댁에 방문할 때면 나이듦의 기준이 서서히 정립되는 것 같다. 어쩌면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삐까뻔쩍한 욕실보다 자주 자주 들러 빈틈을 채워주는 자식들의 온기가 더 필요한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