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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준희 Mar 16. 2021

뽀송의 혼잣말

나란히 앉자는 완곡한 표현

    


엄마는 올해 쉰일곱이다. 엄마는 드러내는 것도, 드러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므로 편의상 엄마의 이름을 교묘히 딴 뽀송으로 그녀를 칭하기로 한다.

뽀송은 어릴 적부터 예쁘기로 유명해 뭇 남성들을 울렸고 피아노 연주회가 있을 때마다 꽃을 든 남자들이 줄을 서 몹시 곤란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그 남정네들을 정리하거나 내쫓느라 골치가 아팠으며, 외삼촌은 여동생이 튀는 것에서 굉장한 창피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 시절 여성이 튄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뽀송은 튀는 행동을 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다소 갑갑하게 살아왔다.

 


    사실, 뽀송은 지금껏 내가 본 여성 중 단연 가장 예뻤다. 배우든 가수든 예쁜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들까지 통틀어 내 눈에 뽀송만큼 아름다운 여성은 없었다.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연세보다 영하게 느껴지는 나의 뽀송. 그녀는 근래에 들어 티브이를 시청할 때면 무대 위 방백처럼 혼잣말을 큰 소리로 내뱉는다. 깨나 충격적이었다. 뽀송이 조금은 외롭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영원한 우리의 여신이었던 뽀송이 갑자기 평범하다 못해 슬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우리를 키워내느라 이렇게나 외로워졌구나, 내가 다 서러워졌다. 그런 뽀송을 보며 내가 놓쳤던 과오를 필름처럼 곱씹어보던 찰나, 뽀송의 습관은 영화관에서도 발현되어 급작스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녀는 혼잣말이라기에는 너무 크고 대화 시도라기에는 좀 애매한 말투로 그 날 함께 영화를 보던 삼남매를 당황시켰다. 맙소사,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치고 있는데 뽀송이 스크린 속 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바보야. 뒤를 조심해야지 뒤를!

       그러다 찔리지 아휴 바보 같은!


    우리의 동조를 얻고 싶던 것인지 정말 주인공에게 주의를 주는 것인지 혹은 둘 다에 해당되는 건지. 잘은 모르겠다만 나는 우선적으로 고요한 객석을 부유하던 뽀송의 방백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 쉿!(검지를 입에 대는 시늉) 여기 집 아니야.


    뽀송은 잠시 잠잠해졌다가 다시금 조용한 방백을 시작했다. 주인공이 위험할 때마다, 주인공에게 범인을 일러주듯 대형 스크린에 대고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평소에도 본인이 스토리의 전개를 맞출 때마다 어깨와 입에 잔뜩 힘이 들어가곤 하는 뽀송은 그렇게 그날도 한 건한 것처럼 자신 있게 말했다.


          엄마가 뭐랬니 글쎄, 걔가 진범이랬지.

          

         아니 엄마, 사람들도 다 알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거 아니야.

        영화관에서까지 그렇게 말 걸면 어떡해!

        습관 됐어 아주.

   

         아줌마 돼 봐라 너도.

        그리고 집에서는 재밌는 거 하니까 너희 와서

        같이 좀 보라고 그러는 거지.

        혼자 보면 재미없으니까!


    뽀송의 방백은 불치가 아니었지만 난치임에는 틀림없었다. 적요한 집안에서 고독을 즐기고, 때로는 시끌벅적한 대학에서의 관심을 즐기던 다소곳한 그녀가 외로운 엄마의 길목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아빠가 함께했던 때와는 달리 홀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적잖이 외로웠을 엄마의 시간이 떠올라 서글펐다. 아빠가 옆에 있었다면 죽이 잘 맞아 스토리 전개에 대한 욕도 찔끔, 세상에 관한 화풀이도 찔끔 뱉어가며 쌓인 스트레스마저 척척 풀어내곤 했을 텐데. 속상하고 아팠다.


    그 이후, 나는 가끔 내 시간을 포기하고 뽀송과 나란히 앉아 티브이를 시청한다.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산중의 자연인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는 그녀의 옆에서 뽀송과의 단출한 전원생활을 꿈꾸기도 한다. 내내 서울 살이만 했다가 조용한 곳으로 가면 좀 외롭고 더 무섭겠지? 갑자기 홀로 산중생활하는 자연인들을 보며 내 옆에서 혼잣말을 하는 뽀송을 보다 그녀의 젊은 시절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없었음이 한탄스러워졌다. 왜, 딸은 젊었을 때의 엄마를 쏙 빼닮고 아들은 아빠의 청춘시절을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다 별안간 내가 아이를 낳은 후 엄마의 길로 서서히 들어서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뽀송의 반만큼이라도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다. 나는 그녀만큼 착하지 않고 고집도 세니 뽀송처럼 나이 들긴 글렀다. 연애도 결혼도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것이, 내게는 사치다.









    그저께는 벼르고 벼르던 뽀송의 돋보기안경을 맞췄다. 돋보기를 쓰게 됨으로 본인의 나이를 실감하게 될까 두려웠던 것인지, 돋보기안경을 쓰는 것은 곧 할머니 소리를 듣게 되는 것과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말에 요상한 자존심을 지키려던 것인지. 뽀송은 책이나 컴퓨터를 볼 때마다 답답해하면서도 내가 돋보기 좀 맞추자고 아무리 말을 건네도 그냥 인사치레로 넘겨 버리곤 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외출 후 돌아오던 길, 집 앞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뽀송을 데리고 안경점에 들렀다. 증상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직원 분의 질문에 그녀는 쑥스러운 듯 안 보였던 것에 대한 불편함을 조심스레 토로했다. 나는 그 모습에서 느닷없이 소녀같은 뽀송의 표정을 발견했다. 그래,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뽀송은 이따금씩 그런 표정을 지어왔다. 뽀송은 꽃을 사줄 때마다 매번 아이처럼 사르르 녹아내렸고, 삼남매가 건넨 편지를 읽으며 연애 편지를 받은 듯 아린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꽤 오랜 기간 삼남매는 엄마로서의 뽀송의 모습만 기억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이 들어가는 엄마 곁에서 자주자주 엄마를 살피다 보면 젊었을 때의 엄마의 모습을 왕왕 마주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내가 옆에서 덜 외롭게 해야지. 조금 더 깊게 살펴봐야지. 카드로 뽀송의 돋보기를 긁으며 다짐을 거듭했다.  


    


    망했다. 엉겁결에 아무렴 그래도 결혼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날 닮은 아이를 낳으면 내가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적어도 그 아이에게서 나를 발견해가던 중 엄마의 모습을 대면하기라도 하면, 그 날엔 엄마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어머. 저 여자 봐! 웬일이니. 저렇게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내 버린다고? 오늘도 뽀송은 티브이 앞에서 거칠은 방백을 이어간다. 후아. 저건 필시 새로 시작한 드라마를 같이 보자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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