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감동적이지 않은 삶은 없다
어쩌다 보니 자꾸만 인물 이야기만 하게 된다.
내가 각별히 인물 취재를 좋아해서 그런 모양이다.
*
뭔가를 배우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나이가 적든 많든 타인에게서는 얻는 바가 많다.
비슷한 나이대에게는 동질감과 신선함을 얻고,
지긋한 나이대에서는 지난 삶에서 비롯된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낀다.
이 감동은 한 인간이라는 개체가 오랜 기간 삶을 지속하며 위기에 굴하지 않고,
일정한 방향성을 유지해온 데서 오는 듯하다.
우스개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60여 년 이상을 살아만 있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개인 차는 있을 지라도 일정한 분량의 시간은 일정한 분량의 경험을 수반하는 법이니 말이다.
어제는 지난달에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인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편집실입니다."
"안녕하세요, 4월호를 10권 정도 구입할까 해서요."
상대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이내 짐작할 수 있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상대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녀를 대표하는 키워드인 "의지"라는 팻말도 아른거렸다.
"***선생님 아니세요?"
"아이고, 어떻게 아셨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바로 알아요? 나 참 쑥스러워서 몸 둘 바가 없네요."
인터뷰로 맺어진 인연은 이렇듯, 묻는 이에게든 답하는 이에게든 꽤 오랜 기억으로 남는다.
묻는 이는 답하는 이의 포인트를 잡아 기억하고, 답하는 이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상대를 쉽게 잊을 수 없다.
오랫동안 시조시인으로 살아온 그녀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탓에 키가 매우 작다.
사무실 1층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눈길을 돌렸던 것 같다.
물론,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미디어에 나오게 된 것에는 약간 조심스러운 듯했지만.
"이제는 주변에서도 한번 나가보라고 해서요. 너무 떨려서 한 시간도 더 일찍 와있었네요."
"한 시간이나요?"
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어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었는데요. 어떤 강연자는 출강할 때마다 너무 떨려서 한두 시간 정도 일찍 간대요.
미리 도착해서는 주변 사물이나 사람들과 좀 친해지면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나 봐요."
그래서인지 그녀는 떨린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에 비해서는 이야기를 수월하게 풀어냈다.
인터뷰는 무사히 잘 끝났다.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 순간이 되면 인터뷰이들은 대체로 자존감이 조금씩들 높아지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의 삶에 칭송을 보내지 않지만, 각 인물마다 포인트를 잡아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그 포인트들을 부각할 수 있는 말들로 질문을 이어 간다.
어떻게 보면 초반에 이 포인트를 잘 잡는 게 인터뷰의 관건일 수 있겠다.
한참을 그렇게 한 주제로 파고들다 보면 인터뷰이는 자신도 모르게,
"내가 그래도 열심히 살았구나" 혹은 "내 인생에 그래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와 같은 감상을 느끼는 듯하다.
그리고 그 순간은, 인생의 갖은 역경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그들의 삶에 내가 박수를 보내는 때이기도 하다.
*
인터뷰가 무사히 끝난 날, 늦은 저녁 시간에 내 핸드폰으로 문자가 하나 왔다.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올림"
간혹 이런 메시지를 받는 날에는 왠지 모를 보람을 느낀다.
발행도 제 날짜에 별 탈 없이 끝나고 나서 얼마 뒤,
그녀는 집으로 도착한 책자를 받자마자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또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부족했던 것인지, 자신이 아닌 척 편집실로 전화를 걸어 감사하게도 책자를 구입해주었다.
아마 내가 사무실 전화를 받자 꽤 당황했던 것 같다.
전화를 받는 순간, 아주 찰나 동안 미묘한 정적이 흘렀으니 말이다.
나는 지나치게 자신을 굽히는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처럼 쑥스러움을 오래 간직한 사람은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꽤 그럴듯한 이야기를 들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