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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Jul 03. 2021

[직장] 월간 에디터의 좌충우돌 편집기 #5

#5 내게도 알바 거리가

잡지라고 하면 흔히 패션지, 뷰티지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내가 만드는 지면은 문화예술지다. 이른바 비주류 잡지인 것이다.


나름은 '24'년의 역사를 가진 '92'면의 '월간'지라는 사실은 일반인에겐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한다.


한 번이라도 책을 만들어 본, 알만한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일 뿐이다. '꽤나 바쁘겠는데요?'

 

요즘 독자들에게 종이책은 그저 귀찮은 존재일 뿐이고, 어쩌다 펼쳐 든다 한들 그림 위주로 훑어보고 만다.


그래서 우리 지면도 텍스트를 많이 줄이고 이미지의 비중을 크게 늘리긴 했지만, 여전히 종이책이라는 태생적 한계에선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름은 지역의 문화예술계 이슈나 전시공연, 인물, 읽을거리를 면밀히 소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생력은 높지 않은 편이다.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지자체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시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이 끊어진다면 언제라도 내동댕이 쳐지는 신세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괜한 편견 일진 모르겠지만, '진짜' 잡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발행기관의 힘에 좌우되는 기관지에 가까운 것이다.


안 그래도 내리막을 걷고 있는 잡지계 내에서 '굳이 우열을 나눌 필요가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분류에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단지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감상일 뿐이다.(열등감까지는 아닐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서점 매대에서 살아 숨 쉬는 시중 잡지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나 역시 잡지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지는 않지만, 시중잡지에는 기관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침몰하는 호화선을 보며 과거의 영광을 투영하듯 말이다.  


뭔가 트렌드에 발맞춰 가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용이하거나, 보다 일반적인 독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시중잡지에 눈길이 간다.


어려운 재정 속에서 매달 발행 일정을 꾸려 나가는 그들의 어려움을 익히 들어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만드는 매체는 기관지의 성격이 강한 탓에, '지역 예술문화를 면밀히 기록하고 소개한다'는 취지는 마음에 들지만, 한 단체나 개인의 공보 역할을 우선하는 발행방침은 에디터로서 심히 내키지 않는 것이다.


*


어찌 됐든 이번 달에도 마감에 여념이 없던 내게, 시중잡지의 에디터에게나 있음 직한 일이 생겼다. 외부에서 작은 일거리가 들어온 것이다. 음악회 촬영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전에 글을 써주고 고료를 받는 일은 여럿 해왔지만 촬영을 해달라는 부탁은 처음이었다. 애당초 나는 전문 사진가가 아닌 것이다.


지면에 사용하는 사진 정도야 직접 찍어왔지만 외부 촬영은 확연히 다르다. 지면에 실리는 이미지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디자인으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 그 자체만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외부 촬영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고사하려 했다. 하지만 사진 퀄리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겠는 말에 금세 혹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부탁한다는 말에 얼떨결에 떠맡아버리고 말았다.


전화를 끊고 보니 내가 가진 장비가 그렇게 허접해 보일 수 없었다. 나는 제대로 된 망원렌즈 하나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리허설 때도 공연 복장을 착용한다고 했다. 나는 리허설에 모든 걸 걸기로 했다.


발행을 앞두고 있었지만 짬을 내서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 촬영은 일반적으로 실제 공연 때보다 리허설 때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온다.


촬영하는 입장에서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고, 공연자 입장에서도 긴장감이 덜한 것인지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온다.


여담이지만 공연사진은 음악, 연극, 무용 등 각 장르별 특성을 이해하면 좀 더 잘 찍을 수 있다. 각 장르별로 극적인 장면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음악회는 곡에 따라, 연극은 시나리오에 따라, 무용공연은 동작에 따라 해당 공연의 포인트가 정해져 있다.


이를 유념하면 좋은 장면이 나오길 무작정 기다리다 촬영하는 것보다 좀 더 수월하게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공연시간이 길어질 경우에는 계속 집중하고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인 사진술이 바탕이 된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다.  


나는 각 파트별로 하나라도 제대로 건진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많이 찍었다. 다행히도 이번 음악회에는 연주자 구성의 변화가 많지 않아 잘 마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사진을 선별하고 색감을 보정해서 곧장 클라이언트에게 넘겼다. 전달 속도 하나만큼은 아주 독보적이었을 것이다.


클라이언트는 꽤 만족스러운 듯한 반응을 보였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카카오톡 프로필에 자기가 연주사진을 걸어놓은 걸 보면 말이다.


촬영을 하는 동안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나도 이 사진을 찍고 나서는 '이거면 됐다'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좋은 사진은 누구에게나 좋아 보이는 모양이다.


앞으로는 촬영할 때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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