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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Sep 01. 2021

[칼럼] 당근과 채찍, 그리고 희망과 고문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판은 네거티브 공세에 들어갔고,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사회는 더욱 각박해졌으며, 연일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무너져 내리는 자영업자의 수는 경제 현황을 대변한다.


여의치 않은 현실이지만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높으신 분들이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그간의 문제들이 단숨에 해결되기라도 할 듯 공약하는 후보자나, 연이은 백신부족 현상에도 접종 일정에는 차질이 없다고 말하는 국가수장이나,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오를 수는 없다고 선언하는 경제총리를 보면 가슴 한 켠이 답답해진다.


희망은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를 꿈꾸게 했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어린아이를 꿈꾸게 한 부모조차 그 기대에 부응하려 최선을 다하는데, 하물며 민생을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은 용인되기 힘들다.


그런 행동은 불신을 거듭해서 낳을 뿐 ‘희망’이라는 먹잇감으로 상대를 옭아매는 ‘고문’과 다를 바 없다.


“희망은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희망의 순기능을 믿는 나로서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현 상황에서 이 말이 내포한 의미는 주목할 만하다.


뚜렷한 해결책 없이 대중을 현혹하는 말과 행동은 단언컨대 ‘악’이기 때문이다. “작은 희망이라도 있어야 살지 않겠느냐”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그다음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안일한 생각이다.


점점 더 악화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당장의 임시방편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속담이 괜히 생겼겠는가.


이 시점에 재난지원금 25만 원을 소득분위 몇 퍼센트까지 줄지를 놓고 다투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무척 대단한 결단인 것처럼 포장하는 ‘여야, 지급대상 88%로 전격 합의’ 같은 헤드라인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랏빚 내서 만든 25만 원을 받아봤자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다. 멋지게 외식 한번 하고 나도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금도 변함없는 현실을 보며 삶의 의욕마저 사라진다.


우리가 멋진 외식을 하는 사이에도 부동산 가격은 치솟을 것이고, 코로나19는 더욱 확산될 것이며, 간판을 내린 가게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 아니면 이러한 단편적인 정책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나마 다음을 예견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들은 대개 ‘체념’을 한다. 어차피 달라질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누가 무어라 하든 처음부터 섣부른 기대 따윈 품지 않는다.


정치는 아무나 해도 똑같을 것이고, 코로나는 안 걸리면 되는 것이며, 집도 안 사면 그만일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비관적인 생각이 만연한 사회가 과연 정상이라 보는가.


요즘 사람들이 일부러 정치에 관심이 없고 싶고, 백신을 안 맞고 싶고, 집을 안 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럴 만한 여유나 형편이 없어서 그럴 뿐이다. 그런 국민을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심각한 공감능력 결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같은 현안을 놓고도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해결책이 아닌 좀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정책을 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를 높이고 대출규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잡힐 집값이 아니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나 조정한다고 해서 잡힐 코로나도 아니다.


부동산 공급은 늘리되 거래는 시장의 기본원리에 맡겨두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힘겨워하는 국민들이 서로를 탓하게끔 방치하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현대의 우리는 당연한 듯 국가의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지만, 사실 국가는 애초에 사회 구성원들이 더욱 잘 살기 위해 합의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위 포스트는 논객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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