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원리
나는 나이를 먹는 게 좋다. 젊음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불분명한 시간이 까마득한 지난날보다 지금이 더 좋다. 이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렇지만 혼란스러운 세상보다는 조화를 이루며 사는 세상에서 남은 시간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배려와 권리의 구분 기준. 용서와 처벌, 존중과 갑질의 구분 기준.
지금 우리 행동의 판단 기준이 부재하다. 그래서 갑질인지 아닌지, 심신 미약으로 선처가 가능한지 아닌지, 권리의 방치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다.
심신 미약으로 상해 및 살인을 저질러도 집행유예가 나오고, 갑질 부모의 자식 사랑이 넘치다 못해 이글거려도 진짜 피해자의 이야기는 무시하고, 육체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그들의 지식수준에 따라 부여하는 이상 우리는 갈 곳을 잃은 야생마와 다름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기준의 부재는 교육이 역할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부재한 교육은 사람들의 비공감과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긴다. 본능적인 도덕성은 사회적인 안위에 위협당하고 의미를 잃어간다.
학교와 언론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가치를 스스로 버린다. 학교는 학생들의 수치적 능력향상을 최우선으로 하고, 언론은 광고수수료를 얻어내기 위한 시청률 잡기를 우선으로 한다.
학생들의 모든 활동은 성적 향상에 집중되어 있고, 사회는 1등을 찬양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뉴스에서는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다른 프로에서는 음주운전자가 나와서 음주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1등이 되지 못하는 학생들은 자괴감을 느끼고, 세상에 대한 불신을 품는다. 세상은 2등부터 꼴등까지 살아가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
범죄자는 가해행위를 미화하거나 감추며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죄를 지은 후 삶을 버리고 숨어 살아야 한다는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잘못한 일을 가벼운 농담 삼아 상처 입은 피해자를 농락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더 큰 문제는 범죄자가 합당한 형량을 받고 잘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고 다시 사회로 돌아온다면 국민들의 입장이 차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처벌의 수의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은 패배주의를 느끼고 세상을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다시 권력과 부만을 지향하는 암묵적 합의를 만들어낸다.
또 적법한 제재를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적법한 법적 근거로 법원의 합리적인 선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지역구 표를 위해, 지역구민이 필요로 하는 세부민원에 열을 올리고, 국가적인 문제에는 못 본 척한다. 또 법관은 우월의식으로, 자신은 피해자일 수 없다는 마음으로, 가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아량을 보이며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하기도 한다. 가해자의 교화만을 믿기에는 범죄의 수준을 너무 가볍게 본 게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이들의 판단 미스는 교육의 부재로 유인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처벌의 가벼움이 불행한 결과를 잉태한다.
모든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교육의 부재로 사회적 합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는 잘못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처벌의 미약함을 끌어낸다. 그리고 기울어진 신념은 다시 교육을 위태롭게 한다.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원인이 된다.
나는 성악설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선설을 믿는 것도 아니다.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것은 환경적인 영향을 받으므로 더욱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교육 안에는 잘못에 대한 제재 또한 포함되어 있다.)
요즘 사태를 보면 단순히 교육청이 선생님 인권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묻지 마 폭행 가해자를 단순 구속 수사하는 등 표면적인 조치를 취한다고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상기후로 지구가 유례없는 재앙을 일으키듯, 한계가 다다른 극한의 감정들은 미쳐 날뛰고 있다.
지구 안의 인간의 멸종을 막기 위해 산업의 구조를 바꿔야 지구의 포효를 멈출 수 있다.
그리고 극단으로 치우친 감정 에너지를 희석하여 중용을 이루어야 지구가 우리를 없애기도 전에 스스로 자멸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영화와 사회현상을 본 소감일 뿐, 나 역시 음양의 조화가 깨진 미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글을 쓰는 내내 들었다. 절대 겸양의 덕이 아니다. 그리고 염세주의자답게 이렇게 인간이 자멸의 시기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던 것을 숨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