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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하는 아이

정신을 놓은 건 아닙니다.

by 유달리

여기서 내려야 해, 그러려면 저 벨을 눌러야 하지. 그런데 언제 눌러야 하지? 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게 누르고 바로 이곳을 벗어나는 거야. 바로 그거야!


소녀는 크지 않은 입을 작게 오물거리며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리를 내며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도망칠 각을 재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져서일까, 같이 얘기 나눌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같이 얘기 나눌 사람을 두기 싫어서일까. 뭐가 됐든 생각이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침과 함께 위장으로 떨어져 잘게 잘게 씹어지던 시간이 많아지면서 일 것이다. 한도 초과된 생각들은 완벽히 소화되지 못하고 배 속에서 고된 유영을 하며 더부룩함을 야기했고, 정제되지 못한 혼잣말로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걱정과 고민을 뱉는 것으로 시작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곧 나는 대부분의 생각들을 입 밖으로 꺼내야만 모든 게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날씨가 좋다라든가, 너무 더워서 집에 가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싶다라든가, 하찮은 얘기들도 전부 나의 이야기의 주제였다.


시도 때도 없이 혼잣말을 했다. 다만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게, 소리는 나조차 듣기 힘들게.

지나가는 사람이 나의 모습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 놀랄 수 있으니 말이다. 걸어가며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좀 무섭지 않은가.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들이 보통의 사람들을 두렵게 할 수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도 나는 혼잣말을 한다. 아마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게 오랜 습관은 사라질 줄 몰랐다.

혼잣말을 안 해 보려고 노력도 해 봤지만, 명치가 답답하고 속이 더부룩해져서 이내 포기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여전히 혼잣말을 해야 하고, 남들 눈에 띄지 않게 혼자 웃는다.

미친 건 아니다. 그러나 미쳤다고 오해받을 수 있으니, 나는 더욱 신중을 기한다.


요즘 나는, 날씨가 미쳤어, 낮은 더운데 저녁엔 추워, 어후 얼른 집에 가서 드러누워야겠다, 인간 멸망이 본격시작되는 것인가,라는 쓸데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기엔 세상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며 되지도 않는 변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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