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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Nov 18. 2019

호구는 여전히 호구조사에 답한다

보통의 존재는 있어도 보편의 존재는 없다

 


 "형제자매 있어요?"


 첫 만남으로는 참 평범한 질문이었다만, 내가 이 질문에 답하면 꼭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래도 일단 물어준 성의를 보아,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또 내 동생이 몇 살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잠시 우리 터울을 생각했다가, 올해 20대 중반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남자 나이가 20대 중반이 되면 군대에 갔다 와서 대학생이거나 혹은 군대를 아직 가지 않은 대학생이거나, 어쨌든 대학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론 바로 취직하는 사람도 많지만, 대졸자 비율이 OECD 국가 중 1위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다들 너무 당연히 대학은 갔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내게 동생은 무얼 하느냐고 되물었다. 괜히 뜸 들이는 시간이 길어지고 불편해하는 나와 다르게, 상대는 내가 무슨 대답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아마 거짓말을 해도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숨기고 싶을 만큼 부끄러울 일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이 대화를 끝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동생이 발달장애가 있어요. 보통 주간보호센터를 가거나 집에서 쉬죠."

 "아……. 미안해요."


 도대체 뭘 미안한 건지, 상대방은 내게 사과를 했다. 아니, 사실 미안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도 전에  '괜한 걸 물었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면 나는 모두에게 당연한 가족 질문에도 쉬운 대답 하나를 매끄럽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이상하게 지은 죄가 없이도 고개가 푹 숙여졌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들이 세운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거기에 '보편성'이란 이름을 붙인다. 이 보편성은 거름망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인간 군상을 분류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그 그물, 구멍이 참 크다. 어쩐지 거르지 않아야 할 것도 거르고 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도 듬성듬성 구멍이 숭숭 뚫린 어망이 하나 있다. 바로 '가족'이다.




 '보편적인 가족'이란 기준에서 살아남은 다수의 사람들은 저들끼리 더 끈끈하게 뭉친다. 그리고 발아래 걸러진 자들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이런 가족에 대한 편견을 자기도 모르게 드러내는 게, 첫 만남에서 하는 호구조사이다. 당연하게 상대방의 어머니에 대해, 남편의 직업에 대해 묻고, 남의 가정에 대해 제 삶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러고는 '당연한' 질문을 했는데, '당연하지 않은 답'이 나오면 어쩔 줄을 몰라한다. 애초에 물어보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면서, 딱히 가여워할 일이 아님에도 가여워한다.


 내가 이런 호구조사를 무례하다 생각했던 이유는, 단순히 개인사를 파고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속에 '이건 누구에게나 당연하다.'라는 선입견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섣불리 다른 이의 삶을 가여워하기 전에, 혹시 내가 나만의 보통을 보편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다수에게 당연한 사실이 모두에게 당연하다고 할 수 없기에, 이 세상에 보통의 존재는 있어도 보편의 존재란 있을 수 없다.






글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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