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제가 정한 게 아니니까요
줏대 없이 이것저것 해보고 금방 질리던 내가, 단 하나 오래 붙잡던 것이 있었다. 바로 글쓰기였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초등학생 때 게임머니를 충전할 돈이 없어서 상장에 딸려오는 문화상품권을 받기 위해서였다. 동기가 불순한 거에 비해 결과는 쏠쏠했다. 그렇게 게임 때문에 시작한 글쓰기는 후에 내게 게임을 뛰어넘는 관심사가 되었다. 그 이후, 나는 글을 쓰며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는 글을 쓰며 주변에서 받은 칭찬들을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내가 글을 잘 쓴대! 나중에는 이런저런 것도 써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는 영 시큰둥하셨다.
"그렇게 잘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를 보고 부산시 헤밍웨이의 탄생이라 하기에는 재능이랄 것이 많이 모자랐으니까. 결국 나는 인생 경험이 더 많은 아버지의 말을 따라서 쥐던 펜을 놓았다. 그렇게 '그대로만' 자라줬다면 평생을 말 잘 듣는 자식으로 살았겠지만, 얼마 지니자 않아 양친에 대한 나의 무한한 믿음이 깨지는 사건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나는 손이 작고 야무져서 귀지를 아프지 않게 잘 파내는 사소한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온 식구는 안심하고 내게 귀를 맡겼고, 사건의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동생의 조그만 귓구멍에 온몸의 신경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넌 참 섬세해서 의사가 되면 수술도 참 잘하겠다!"
귀지와 수술? 글 쓰는 건 별 게 아니라고 하신 분께서 귀지 좀 파내는 걸 보고는 전혀 상관없는 의사를 떠올리신다니. 심지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시뻘건 피가 나오는 영화는 물론이고 실제 피도 끔찍해했는데 말이다! 차라리 내게 상해로 가서 귀 청소사를 하라고 시켰다면 아다리가 맞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억지였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부모님이 권해줬던 모든 일이 그러했다. 그들이 어떻게 에둘러서 말하든 결론은 하나였다. 딸아, 네가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하고, 직업은 안정적인 걸 가지렴. 양친이 내준 장래희망이라는 문제에서 내가 적을 수 있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평일 오전 카페를 가면 이런 모습이 보인다. 수많은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이 납득할 수 없는 꿈을 가진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시킬지 토론한다. 그들은 '내 자식이 고생할까 봐. 다 널 위해서 하는 소리야.'라고 말하지만 부모의 세대에 통했던 방식이 미래에도 통하며, 자식이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산다고 고생하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다.
산다는 것은 결국 매 순간 내가 내린 답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아이의 선택이 걱정된다면 좋아 보이는 선택지를 직접 쥐어주기보다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줘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어른들이 아이를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미래이란, 딱 이 정도 일 것이다. 아이들이 제 인생에 대해 어떠한 답을 내리더라도 서로의 우열을 가리지 않는 세상. 그 세상은 어른들만이 만들어줄 수 있다.
글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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