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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Dec 25. 2019

울면 안 되는 크리스마스는 없다

엉엉으어으어엉엉엉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제 몸을 뒤집는 일 하나에도 박수받던 아기는, 밤을 꼴딱 새워 성공한 프로젝트에도 야근수당 하나 받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인디아나 존스를 보며 자라서 전 세계를 유랑하는 모험가를 꿈꿨던 아이도, 코리아나 존스가 되기에는 1박 2일의 주말이 박하다는 것만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는 분명 5점짜리 '아주 멋지다.'인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3점짜리 '보통이다.'인간이 되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어릴 때는 울면 이 상황을 해결해줄 어른이 나타났는데, 이제는 울어도 내 상황을 해결해줄 어른이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울고 싶어 지는 날이 있는데, 이제는 다 커버려서 우는 게 창피하게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익명의 할아버지에게 눈물샘까지 저당 잡히며 감정을 조절해야 했던 아이들은 커서도 여전히, 제대로 울어볼 기회가 없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는 이런 말이 있다.


 '패배자'라는 말은 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냉혹한 말이다.


 이 말처럼 사람들은 중요한 경기에서 패배하여 우는 이를 조롱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비참해진 이에게 뭐 그깟 걸로 우느냐 삿대질한다. 슬픔을 부끄러워하며 우는 이를 패배자라 여긴다. 이렇게 울음을 쉬쉬하는 사회에서 슬픈 감정은 철저히 거세당해온 인간들이 1년 중, 제 생일보다 기뻐하는 남의 생일에 마음 놓고 괴로워할 용기를 낼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하루 정도는 슬픔의 바닥에 깔린 누룽지를 박박 긁어낼 수 있는 날이 필요하다. 그 하루가 하필이면, 오늘같이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날이라서 분위기에 좀 맞지 않다 하더라도 말이다.


 TV에나 나오는 따뜻한 연말 파티, 캐럴이 울려 퍼지는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우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추운 길거리에서 타인에게 성냥을 팔아야 했던 아이가 울었고, 생활고에 휴일에도 일을 나서야 했던 아이, 행복해 보이는 군중 속에서 외로워진 아이가 울었으며,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즐길 수 없는 아이들이 울었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산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 않을 것이 아니라 울지 않아도 되는 오늘을 줘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준다던 선물만 빼앗았으니 서럽던 아이만 악으로 깡으로 울지 않고 버티는 법을 배웠다. 뭣 때문에 우는지 물어보지 않았은 산타 덕에 우리는 슬퍼도 억지로 웃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니 이제라도 흰 수염 아저씨의 조악한 임시방편에 흔들리지 말자.







 따뜻한 온기 속에 달달한 코코아와 사방으로 막힌 벽,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어느 날. 그런 울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위해, 울음을 쏟아내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도 된다. 그런 날도 있을 수 있다.






글쓴이의 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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