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Jan 09. 2020

특허권은 이미 만료되었다

특허권의 존속기간은 특허출원일 후 20년이 되는 날까지로 한다



 어릴 때 복제인간에 대해 다룬 영화, <아일랜드>를 보았다. 오염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인류들이 통제된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데, 알고 보니 지구는 오염되지 않았고 유일한 희망인 아일랜드로 가는 추첨은 사실 죽으러 가는 길이었던 이야기. 갇힌 사람들이 바깥세상 부자들의 장기 보험일 뿐이었다는 전개는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그때는 미래에 정말 저런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했다. 영생을 살기 위해 자기와 똑같이 생긴 걸 만드는 세상. 그리고 영화 <아일랜드>의 배경이던 2019년 7월 19일이 지난 시점에서, 양친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내 특허 같은 거야. 특허!"


 물론 나는 그들의 창작물이 분명했다. 그러면 그 창작물에 대해 특허권자가 적당한 권리는 행사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이놈의 자식은 그 틈을 허용하질 않았다. 경제적 독립만 하랬더니 관계의 독립도 달라며 제 인생의 선택권을 운운하는 이 피조물을 보며, 아버지는 괜히 섭섭해했다. 주변에서는 내 인생계획에 자신이 했던 선택지들(결혼이라던지 출산이라던지, 아무튼 남들이 하는 건 다)을 들이밀며 '이것도 챙겨야지.'라고 말해줬다. 죄송하지만 그거 일부러 빼먹은 건데요…….





 이왕이면 나도 남부럽지 않은 딸이 되어드리고 싶었지만, 복제인간이 아닌 이상 부모님 생각대로 똑같이 자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아, 아니다. 복제인간인 링컨 6-에코도 결국 탈출을 했구나. 복제인간조차도 창조주의 뜻대로만 살지는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천적을 피해 사방을 뛰어다녀야 하는 토끼나 망아지, 눈뜨자마자 한정된 암컷 돼지의 젖을 형제들과 경쟁하여 더 많이 쟁취해야 하는 돼지와 다르게, 인간은 두 발로 걷는 것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걷고 하고 나면 말을 할 줄 알아야 하며, 말을 하고 나면 공부를 해야 하고, 또 일을 배우고 돈을 벌고……, 해야 할 것이 산더미다. 이렇게 다른 종보다 독립이 까다로운 어린 인간들은 어른들의 보호를 받으며 성년 개체로 성장한다. 국가나 사회기관이든 또는 가족이든, 새끼 인간들에게는 최소 20년 가까이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자식이 특허라면 어른이 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 특허권의 존속 기간이 만료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양친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성년 개체가 된 이후의 삶은 오롯이 자식들의 몫이다.


  "내가 아버지의 특허 일리도 없지만, 만약 그랬다고 해도 벌써 20년이 지났는걸요."


 그러니 내가 그들의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라 하여도 나는 특허를 연장해줄 이유가 없다. 훌륭한 명작가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아 서명까지 새겨진 걸작으로 원하지 않는 곳에 걸린 삶을 사느니, 작가 미상의 그림이 되어 어디 걸릴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된다 하더라도 좋다. 나라는 그림은, 내 인생을 걸어놓을 벽을 나 스스로 찾아 나서고 싶다.






글쓴이의 말

2020년이라니, 숫자가 아직은 낯설어요


▼ SNS  자주, 가깝게 만나보아요!

유달리의 트위터 

유달리의 인스타그램


▼ 제가 쓴 <나다운 건 내가 정한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여기를 클릭 시 구매 링크로 이동

작가의 이전글 울면 안 되는 크리스마스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