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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05. 2020

클라우드 서버 위의 학교가 하는 차별

온라인개학에 대한 두 가지 생각



 1. 어떤 학생이 가출을 했다. 집을 나가기 전, 그는 보호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답답해서 잠시 나갔다 올게요.' 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싶겠지만 개학 연기에 따라 좁디좁은 단칸방에서 4주 이상 방치된 학생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균형 있는 식단을 한 끼라도 챙겨줄 수 있는 식당은 학교 급식소뿐이었으며, 때때로 폭군이 되는 보호자에게서 대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가 학교밖에 없었던 학생에게 '등교하지 않는 개학'이란 무기한 옥살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학생이 7시간이 넘는 수업을 한 자리에서 들어야 한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스마트 기기의 보급일까, 아니면 수업을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장소일까?




 온라인 개학을 미래 교육의 시범안이라 말하는 교육부를 보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는 '미래 교육'이란 클라우드 서버 위에 지어진 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미래를 위해서는 스마트 기기의 100% 보급과 어딜 가든 빵빵하게 터지는 와이파이가 필요조건일까? 아니. 사실 최소한의 조건은 오프라인 몸뚱이의 안전이다. 그런데 따뜻한 밥과 안전한 생활환경이 전제되어야 가상의 학교에 등교할 수 있다면, 온라인 학교는 더 큰 교육 불균형을 불러오는 꼴이 아닐까. 보호자가 평균 소득 이상인 학생들은 학교가 클라우드 서버 위에 있든 집 앞 10분 거리에 있든 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실제의 학교로 등교해야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들에게 학교는 배움의 장, 그 이상의 의미이다. 땅 위에 세워진 학교는 이 학생들에게 '갈 곳'을 마련해주고 안전지대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학교가 없어진다면 이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2. 전시 상황에서 누구를 먼저 대피시키느냐, 위급 상황에서 가장 처음 마련하는 대책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집단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육부에서 내놓은 신학기 온라인 개학 실시에 대한 보도자료(2020년 3월 31일 기준)를 보면 대한민국이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한눈에 보인다. '수능 시행일 등 2021학년도 대학 입시 일정 조정'.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대분류로 나와 따로 대안이 마련된 것은 진학하는 고3들 뿐이었다. 직업계고, 장애학생, 다문화학생, 대안학교 학생을 위한 대안은 두 줄에서 네 줄이 전부인 글을 보자 '이 나라에서 학벌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보여줄 필요는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의 민낯에 낯짝이 뜨거워졌다.


 기노시타 하루히로는 <강요하는 초보 감동시키는 프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이 학생은 내 아이가 아니다. 어떻게 되든(물론 잘 되는 편이 좋지만) 이 학생의 인생이다.'라는 냉철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멋진 '방식'을 실시해도 결국 그 '방식'은 멋지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이 말에 따르면 현시점에서 기술보다 중요한 건 관심이다. 그리고 이번 교육부의 보도자료는 이 사회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비주류 학생들을 '내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냉철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멋진 정보통신 기술을 도입해도 그 결과는 멋지지 않을 게 뻔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온전한 교육이 힘든 시기일수록 국가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관심의 결손이 해결되지 않는 나라에서 수업의 결손도 해결될 리 없으므로.







글쓴이의 말

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대안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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