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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y 10. 2020

월경의 시작만 축하합니다?

'여자가 된 걸 축하'했지만 '왜 이래, 너 그날이야?'라고 말하는 사회


1.

 영어 캠프에서 초경이 터지고 조기 귀가를 한 내게 엄마는 내가 드디어 '임신을 할 수 있는 여성'이 되었으니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빠는 꽤 민망해하면서 케이크를 사 오셨던 것 같다. 나는 엄마를 보며 생리대가 아랫도리의 피를 틀어막는 용도로 쓰인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주변에 이미 초경을 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니 갑자기 나온 피가 딱히 무섭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없었다. 다만, 좀 당황했을 뿐이지. 영어캠프에서 이불에 피가 아니라 포도 주스를 흘렸더라도 똑같이 느꼈을 정도, 딱 그만큼의 당혹감이었다. 오히려 나를 의아하게 만든 건, 부모님의 축하 말이었다.


 "우리 딸이 진정한 여자가 된 걸 축하해!"


 우리 엄마가 왜 저러지? 나는 어제도 여자였는데. 그래도 그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달콤한 케이크를 한입 가득 퍼넣으며 생각했다. 아무튼 이 초경 파티의 주인공이 '나'인 건 분명하잖아? 엄마가 될 수 있는 진정한 여성인 '나'.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악센트는 여기에 있었다. '엄마가 될 수 있는' 진정한 여성인 나.



2.

 아니, 앞의 말은 기각한다. 만약 당신이 여자라면 월경이 축하받을 일은 딱 처음뿐일지도 모른다. 그 후에는 대부분 짜증 내는 여성들을 보며 '오늘 예민하네. 그날이야?'라고 말하고, 심지어는 자신도 감정의 극단을 달릴 때면 '혹시 이게 생리 전 증후군인가?'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데 이 논리라면 성별을 떠나 살면서 PMS를 안 겪을 인간이 없다. (오히려 여자는 온순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병이다.) 더불어 약 42km를 달리는 마라톤도 완주를 축하해주는데, 약 50세가 넘도록 매달 하던 일을 끝내는 완경은 여성으로서의 사형선고로 취급한다. 그러니 앞으로 살면서 서러울 일을 생각하면, 어디 동네를 빌려 축제라도 열어야 덜 억울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땅히 받아야만 할 파티래도, 제대로 알고 받는 게 좋겠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활동하는 의사인 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켄 달은 "질의응답"이란 책에서 '월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생리란 그 자체로 이점이 아니라 점막 성장이라는 이점에 수반되는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그 점막 성장은 임신을 잘하기 위한 것일 뿐, 임신하지 않을 거라면 꼭 필요한 일은 아니다. 꼬박꼬박 생리하는 게 몸에 좋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점막이 매달 성장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는다면, 생리도 의미가 없다. 생리는 결과일 뿐, 생리 자체가 몸에 좋은 건 아니다. 생리는 그저 다달이 피를 좀 잃는 일일 뿐이다.


 그렇다. 호르몬이 만드는 행사가 자라는 인간을 여자로 만들어 주진 않았다. 그것보다 월경은 삶이란 메인 요리에 임신이란 추가 토핑을 선택할 기회에 가까웠다. 우리 인생은 토핑 좀 없다고 실패하거나 메뉴판의 토핑을 죄다 넣는다고 맛있어지지도 않는다. 더불어 옆 테이블 누군가 이 음식은 이렇게 먹는 게 더 낫다고 훈수를 둔다면, 그놈이 미친 거지 당신이 잘못했을 리 없다. 본인이 기본에 충실한 맛을 즐기겠다는데, 뭐! 당연한 말이지만 추가 토핑은 말 그대로 추가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3.

 우리 사회는 진정한 여성의 탄생을 원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초경을 축하하기보단, 월경을 긍정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부정적인 편견은 정보의 부재에서 생긴다. 월경을 쉬쉬하는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냉이나 생리혈을 더럽다고 느끼거나 월경 중에는 아무리 섹스해도 임신하지 않는다는 미신을 쉽게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애당초 월경이 긍정적인 사회는 다르다. 굳이, 열과 성을 다해 '처음'을 축하해줄 필요가 없다. 시작 전부터 월경을 언급하고 준비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딱 한 번, 케이크 한판을 받고서 평생 호르몬의 노예라는 오명에 시달릴 일도 없다.


 상상해보자. 정확한 월경 상식이 가정부터 시작하여 학교, 사회 도처에 즐비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 더불어 새어 나온 핏자국에 '어, 뭐야. 비상용 과산화수소 있으신 분?' 같은 멘트가 이 사회에 자연스러워진다면 어떨까? 그 사회의 소녀들은 아무도 제 몸의 피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의 말

여성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물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도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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