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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Feb 17. 2019

넌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우리는 항상 대부분의 사랑에서 서브 캐릭터였기에

 

 "아, 쟤는 왜 자기를 좋아해 주지도 않는 사람한테 매달리는 거야?"     


 친구와 어떤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았다. 메인 커플의 행복한 모습을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서브 조연의 모습이 나오자 괜히 마음이 답답해져 TV를 등지고 뒤로 돌아 누웠다. 누가 봐도 자기를 이성으로 보지 않는데 왜 저 캐릭터는 주인공을 위해 희생하고 상처 받는 걸까? 나는 분명 네가 서브 조연인 걸 알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왜 널 보며 안타까워할까. 이 정도면 내가 고통을 즐겨 일부러 이러는가 싶다. 적극적으로 구애해 사랑을 쟁취하는 잘생긴 메인 주인공과 멋진 상대의 이야기에 이입해야 내 마음이 아프지 않을 걸 알지만, 이번 드라마도 여김 없이 서브 주인공에 빙의되고야 말았다.     


 "서브 주인공 같은 거 없었으면 좋겠어."

 "왜."

 "안 이뤄지면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 쟤도 진심인데 고백해도 계속 차이기나 하고."

 "그걸 노리는 거지."

 "그걸 왜 노려. 작가가 변태야?"

    

 드라마에서 전지전능한 작가가 한 세계의 신이라고 한다면, 우리 삶의 신 또한 사디스트 Sadist 가 아닐까 의심하게 될 정도로 현실에서 사랑의 작대기는 가혹하다. 그렇기에 현실을 모티브로 한 2차 창작물만큼은 모두에게 꽃밭이면 좋겠는데, 여기서도 나 같이 미련한 놈이 꼭 한 둘은 나온다. 


 "야 됐고 TV나 봐봐. 네가 응원하는 애 운다."

 "하, 쟤는 뭐가 문제일까. 저렇게 멋진데 만날 사람이 걔 하나밖에 없대?"

 "그럴 수도 있지. 또 저렇게 매력적인 사람도 항상 주연일 수는 없다는. 뭐, 이런?"


 나도 알아. 근데 그게 너무 슬프잖아. 바보같이 자기 싫다는 사람 말고 내 인생으로 넘어온다면 주저 없이 메인 자리를 내줄 수도 있는데, 넌 왜 스크린 안에 갇혀 있는 거야? 화면 속의 짝사랑을 구경하며 ‘왜 저 캐릭터는 쟤를 포기하질 못하냐.’ 비난하는 모습은 어쩌면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 같다. TV에서 다른 사람과 행복해하는 주인공을 단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서브 조연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마저도 메인 커플의 애정씬보다 더 짧게. 아주 짧게 화면을 지나갔다.     





    

 주인공과 이어질 가능성이 0.001%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김탄보다 최영도가 눈에 밟히고 쓰레기보다는 칠봉이를 응원하게 되고 최택보다는 김정환, 유정보다는 백인호가 신경 쓰인다면 당신은 '서브병'을 앓고 있다. 서브 캐릭터들은 항상 이뤄지지 못한 사랑 때문에 인생의 짠내가 기본값이며 타이밍은 매번 어긋난다. 심지어 주인공 뒤에서 답답하리만큼 묵묵하게 지켜보기만 하며,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는 모습은 보는 이의 속을 터지게 한다. 분명 주연보다 서사도 분량도 부족해서 이 캐릭터의 일방통행이 쌍방이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작가가 설정해준 메인 주인공이 아닌 서브 주인공에 이입하게 될까.

 

 서브 캐릭터는 주연만큼 혹은, 그보다 더 간절하게 상대방을 사랑해도 결국 상처 받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이 현실의 사랑에서 우리 포지션과 비슷하다. 살면서 스쳐 지나가는 많은 인연과 사랑의 서사에서 우리는 항상 메인이 될 수는 없었다. 서로 마음이 통한 관계가 아닌, 나만 간절하게 저 사람을 원하는 서브 조연이거나 혹은 그 사람 주변에 내가 있는지도 모르는 엑스트라가 나의 역할일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저렇게 괜찮은 캐릭터가 차라리 다른 사람을 좋아했으면 싶어 안타까워하고, 철벽을 치는 주인공에 상처 받아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그만 네가 더 망가지기 전에 차라리 포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한 번쯤은 상대방이 서브 조연의 마음을 알아주길 원하고, 가끔은 메인 주연보다 한 발짝 일찍 도착해 사랑의 타이밍이 어긋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마지막 회까지 꾹꾹 참고 보아도 서브 캐릭터의 사랑이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얼마나 멍청한지 메인 커플의 결혼식에서 사회나 봐주고 앉아있지 않나, 사랑의 경쟁자에게 사실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너를 좋아한다는 세상 잔인한 말을 제 입으로 전하며, 사랑의 큐피드가 되기도 한다. 미련한 그 모든 모습이 마치 나 같아서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나면 행복하게 끝난 메인 커플보다는 불친절하게 상상에 맡겨지는 조연의 결말이 더 궁금해진다. 하지만 드라마는 철저히 주연을 위한, 주연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조연을 위한 에필로그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참 다행인 건 드라마가 아닌 실제 인생은 꽉 닫힌 로맨틱 코미디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막장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서브에게도 스핀오프의 Spin-off, 기존 원작의 설정을 가져와 새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 후속작이나 에필로그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의 인생이 16부작 미니시리즈 한 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다른 이야기에서 또 다른 역할을 맡기 때문에 지금 당신이 짝사랑 서브 롤이라고 하여도 영원히 서브 롤로 남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드라마가 끝나고 다음 작품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너무 아픈 사랑에 우리 자신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지는 말자. 지금 이 짝사랑의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여운이 긴 웰메이드 드라마의 한 순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잘 마무리된 명작으로 우리의 필모그래피에 남긴다면, 인생의 마지막 상영회에서 짝사랑은 미화된 '추억'이란 이름으로 다시 꺼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쓴이의 말

로맨틱 코미디가 싫으면 좋은 동료를 만나는 장르물 인생도 꽤 행복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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