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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r 07. 2019

사람이 싹싹한 맛이 좀 있어야지

죄송합니다만 지금부터 갑자기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회사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왔다. 늘 무표정에 점심도 우리와 따로 먹는 걸 선호하고, 싫은 걸 좋다고 웃어넘기진 못하는 사람. 한마디로 남의 비위 맞추는 쪽으로는 아예 노력을 안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일을 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잘한다. 말이 좀 적을 뿐이지 자기 일은 확실히 하고 시킨 일을 금방금방 잘 해낸다. 하지만 누군가는 일 잘하는 경력직보다 다른 걸 잘하는 사람을 바란 것 같다.


 “참 이번 사람은 싹싹한 맛이 없어.”

 “좀 사람이 상냥하게 웃고 다니면 어디 큰일이라도 나는가? 하하하!”     


 이번 경력직 사원은 표정이나 마스크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를 하며 내 앞의 상사가 제 얼굴 위로 손으로 두 번 쓱쓱 휘젓는다. 다들 누르면 터지는 웃음 자판기라도 된 것처럼 시답잖은 말에 웃어대는데 나도 분위기를 타서 웃었다. 그렇게 한 차례 메스꺼운 수다를 떨고 자리로 돌아왔다. 건너편 화제의 사원은 여전히 무표정이다. 오전부터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일에 열중이다. 내가 앉으니 옆 사람은 내 귀에다 대고 ‘아무리 그래도 하루 종일 이어폰 꽂고 있는 건 좀 아니지 않아?’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귓속말보다 그 사람 뒤에 붙여진 ‘자유로운 직장’, ‘수평적인 조직을 향하여’라는 슬로건이 눈에 더 들어왔다.


 “하하, 아무래도 그렇죠?”

 ‘그 말 하는 당신도 지금 헤드셋을 챙기잖아. 이어폰만 아니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하루 종일 속이 꽉 막힌 듯 불편했다. 그래서 퇴근길에 맥주 한 캔을 사고, 습관처럼 TV를 틀어놓고 화장은 지우지도 않은 채로 앉아서 캔부터 깠다. 한참 생각 없이 예능을 보며 웃는데, 그때 진행자가 게스트에게 애교 한 번만 보여주실 수 있냐는 요구를 했다. 게스트는 애교보다는 자기 신곡을 홍보하고 싶을 거 같은데, 어쨌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스크린을 넘어 나에게 닿았다. 왠지 모르게 그 무뚝뚝한 경력직 사원이 생각났다.





 문제의  그 사원이 신고식이랍시고 상사들 앞에서 장기 자랑하는 걸 보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예전에는 이걸 왜 재밌게 봤더라? TV 속에서 웃는지 우는지도 모를 게스트의 혀 짧은 소리가 들려왔다. 거절하는 게스트를 계속 시키는 진행자나 그걸 보고 웃는 주변이나 모든 상황이 답답해서 맥주 한 모금을 넘겼다. 분명 방금 딴 맥주인데 하나도 시원하지가 않다. 체했는지 속이 꽉 막혀 울렁였다. TV를 끄고 화장실로 가서 김이 다 빠져버린 맥주와 막혀 버린 내 속을 하나도 빠짐없이 게워냈다. 썩어빠진 농담을 비위 좋게 집어삼킨 내 안도 다 비워내고 싶다. 분명 속이 편해져야 하는데, 여전히 답답했다. 빈 속에도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이 느껴졌다.


  




 싫은 걸 싫다고 좋은 건 좋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게 뭐가 어려워?’ 싶겠지만 사실 그게 제일 어렵다. 사회생활은 원래 그런 거라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갑자기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싫은 말에 거절을 하면 싸가지가 없어지고, 날 긁는 말에 화를 내면 감정적이라고 배우면서 우린 스스로의 불호를 속 깊이 숨겨왔다. 그러다 보면 꼭 엄한 곳에서 터진다. 나도 참는데 너는 왜 못 참느냐고 잘 모르는 사람을 헐뜯고 서로를 씹어대다가 또 앞에서는 좋은 사람인 척 가면을 쓴다.   

 

 화를 내면 논란이 된다. 대놓고 기분 나빠하면 프로답지 못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궁금하다. 정말 잘못된 게 화를 낸 사람인가, 아니면 화를 나게 만드는 사람들인가. 분명 싹싹한 맛보다는 쓴맛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왜 너는 쓰냐고 따지는 걸 보면 괜히 웃프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이건 왜 달달하지 않냐.’고 아르바이트생을 쥐어 잡는 것 같다. 수많은 메뉴판에서 하필 그 맛을 요구했기에 주문하신 쓴맛을 줬더니 불평불만이 많다. ‘차라리 그럴 거면 돈이라도 더 많이 주고 단 음료를 시키세요. 유료 친절은 그나마 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이 말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아주 쓴맛이라 죄송합니다. 앞으로 싹싹한 척이라도 해보겠습니다.


 나는 지금도 싫은 티를 꼭 내야겠냐고 말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있다. 건너편에서는 자기 할 말을 다하는 사람이 이쪽을 보고 너네가 이상하다며 삿대질한다. 나도 안다. 우리가 이상한 거. 그래서 이 무리 속에 서있어도 마음은 반대편에 가있다. 하지만 저곳에 당당히 설 용기는 없다. 모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주 가만히 반대쪽을 바라보기만 한다. 나도 원래 저 사람처럼 쓴맛이 나는 텁텁한 사람인데, 여기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달하고 착한 맛으로 보이기 위해 비슷하게 위장을 한다. 그저 몸에 싸구려 시럽을 잔뜩 휘감고서 난 원래 달달한 설탕물이라고 되뇐다. 나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커피? 설탕물?


 "커피 보면서 뭘 그렇게 멀뚱히 서있어! 빨리 들어가자!"

 "……아 네! 가요!"

 "그래서 걔한테 일을 잔뜩 줬어?"

 "좋아하는 일 실컷 하라고 주고 나왔지. 혼자 잘나셨다잖아."

 "달리 씨 땡큐! 팀장님은 프라푸치노, 나는 딸기 라테……."


 점심 식사 후에 입가심을 하자고 들른 카페에서 나는 오랫동안 픽업대 앞에 머물렀다. 생각이 너무 길어졌는지 음료가 나오고 한참인데 왜 안 오냐는 소리를 듣고서야 멍청하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캐리어에 사람 수만큼의 음료를 담아 다시 저 무리로 뛰어들어갔다. 온갖 달달한 음료를 나눠주던 그때, 불현듯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한대 갈겼다.


 "저는 커피요."

 "그래 달리 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저, 죄송하지만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벌써? 우리랑 얘기 좀 더 하다가 가지."

 "아니요. 같이 할 일이 있어서요."




 내가 커피라고 선언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래도 지금이 마지막이다. 커피는 싹싹한 맛 따위 내지 않는다. 억지로 달달해질 필요가 없다. 그러고서 나는 무엇을 두고 온 사람처럼 회사로 달렸다. 아, 이제야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 그래, 나는 커피다. 싸구려 설탕물 따위가 아니라.






글쓴이의 말

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노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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