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구원한다. 나는 이 명제를 철학처럼 믿는다. 또 그 믿음은 내 글쓰기의 근간으로 작용한다. 올여름 나는 수많은 이들로부터 구원받았으며 인생의 제2막을 열어 구원의 산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만나 나의 감정이 움직일 때, 그 흔들림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세상을 감정의 언어로 이해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만났기에, 나는 ‘다시’ 살아보고 싶어졌다.
난 그들을 마주하며 자각한다. 얼마나 오래 마음이 굳어있었는지, 희망을 잃었는지, 슬픔을 감추었는지, 나 자신을 외면했는지. 시원한 빗줄기가 틈새로 스며들어 나의 마모된 껍질이 벗겨진다. 새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과, 헌 사람도 나라는 수용이 앞다툰다. 그러다 반성과 감사의 존재적 물음으로 흘러간다.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내가 받은 만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들과 동경하고 평행한다. 그들과 회복하고 감사해 한다. 은혜를 입었다는 사회적이고 도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들은 존재의 균형을 되찾게 하는 구조적 의미의 은인이다. 스스로를 미워할 때에 대화와 시선으로 나를 다시 믿어보게 하는 능력자들이다. 가끔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그 능력에 대해 생색내지 않는 이들을 볼 때면 경외심 마저 든다. 어떠한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 일으킴. 깊고 진한 감정을 유머로 중화하는 표현들. 보호와 사랑의 기술이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즐겁고 조금씩 나를 성장하게 한다.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멀리 보게 한다. 또 조금 더 나를 아끼게 한다. 어지러운 마음에도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나침반 같은 이들 덕분이었다. 변하지 않는 세상이 힘들어 스스로가 변하려는 당신 곁에, 완전히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의 나도 안아줄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