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by 우동

포기의 눈동자는 차분하다. 일순간에, 단칼에 포기 같은 것은 별로 없다. 미련과 싸우다 최후통첩을 보내는 일이다. 짙은 포기 직후에는 다가올 설렘에 대해 숫기가 없어진다. 부쩍 울적해지고 마는 내심이 있다. 여태껏 모른 척하던 포기의 후폭풍은 끝내 나를 추적하는 데에 성공한다. 당해낼 도리가 없는 막다른 길에 좌초를 겪게 된다.


나의 한계에 대해 명석해지는 일은 그리 즐겁지가 않다. 그런데 묘하게 패배의 제스처만은 취하기 싫어서, 절대 포기를 똑바로 마주하지 않는다. 포기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더 이어가고 싶었는데, 지켜내야 했는데, 감당해야 했는데, 노력할 수 있었는데. 나의 콘티는 리허설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춘다. 현실은 더 이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예행연습, 서사의 단절이다. 애정을 쏟았던 것일수록 마음은 무참해진다.


잠깐, 어라라, 포기도 사실 선택 아닌가? 나는 능동적인 합리화, 가능성의 세계로 입장한다. 그러고는 포기의 낙인을 지운다. 삶이란 살아있는 내가 죽기 전까지 살아있는 세상에 부딪히며 흘러가는 것이니까. 당연하게도 모든 일은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삶은 고단할 때도 빛날 때도 있는 법이겠지. 우리는 그런 고단한 날들도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놓고 나니 알겠어. 그건 내 길이 아니었어. 이쯤에서 관두는 게 맞았던 걸지도. 뭐야, 허.. 이득이잖아? 그래, 그건 도망이 아니었어. 그래, 그건 버린 게 아니야. 그래,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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