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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13. 2020

[전시/공연] '장소특정형 공연' @인천아트플랫폼

참여작가가 남기는 전시/공연 기록

전시나 공연에 참여하면 글을 쓸 일이 자주 생깁니다.

이번에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도 작업에 관련된 텍스트를 요구해서 몇 자 적어봅니다. 


먼저 촬영한 영상의 편집본에 들어갈 텍스트가 필요하다고 해서 컷 전환에 맞게 내용을 써봤습니다.


[영상 삽입본]

1)

Team TRIAD(팀 트라이어드)는 세 명의 아티스트(김호남, 전민제, 홍광민)가 만나 결성된 팀이다. 

2018년, 그들은 '새로운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보자'는 의견 아래 모이게 된다. 


2)

팀 트라이어드는 구성원의 다양한 배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청각 경험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최근까지 도시의 정량적, 정성적인 데이터를 다른 매체로 확장하는 전시와 공연을 선보였다. 


3)

<도시재생장치#2 : Radiophonic Orchestration>에서는 라디오라는 사라져 가는 매체에 주목했다. 

이번 작업은 라디오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사운드 특성을 활용한 야외설치 및 공연이다. 

관객은 제안된 공간을 거닐며, 도시라는 장소를 새롭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프로젝트 결과보고 내용의 일환으로 작업 에세이를 필요로 해서 

작업을 고민하고 전개하며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좀 적어봤습니다. 


[작가 에세이]


1) 도시재생장치의 시작

이번에 선보인 신작 <도시재생장치#2 : Radiophonic Orchestration>는 2018년 도시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에서 열린 <A.I.MAGINE> 전시에서 설치했던 <도시재생장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시는 도시의 미래를 상상해보자는 큰 컨셉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도구를 데이터, AI로 제안하는 뉘앙스가 전시명이나 주최 측에서 느껴지긴 했었다. 개발자의 입장에서 이 컨셉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고민했다. 그렇지만 뻔하게 데이터-머신러닝-인공지능-미래라는 흐름으로 작업을 전개하기에는 뭔가 스스로 납득되지 않고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다. 상상을 해봤다. 이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를. 그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들고 있을까. 그랬을 때 상상되는 것은 앞선 미래를 예측하는 무언가 보다는 다시 재현할 수 없는 과거, 사라진 과거의 시공간을 데이터로부터 재현해내는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개념적인 관점에서 머신러닝은 과거의 재현이다. 현재의 데이터는 포착되는 순간부터 과거의 데이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 데이터를 학습하여 만들어지는 어떤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을 재현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들을 도록에 적어냈었는데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내 생각의 상당 부분을 미디어에서 증명해주었다고 생각한다. TV 프로그램들에서 개인, 유명인과 같은 인물들을 2D, 3D로 재현하는 내용은 이미 많이 나왔다. 저해상도, 흑백인 과거의 사진이나 영상을 고해상도의 컬러로 복원하는 머신러닝 모델들이 이슈가 된지도 오래다.)


2) '재생'과 '포노토그래프'라는 매체

'도시, 데이터, 머신러닝, 재현'에 대한 고민들로부터 '도시재생'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여러 지역에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지역을 모두 커버하는 작업을 만들고자 했으나 제작비 삭감..과 기간의 이슈로 한 지역을 선정해야 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를 선정하게 되었다. 지역의 특수성,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역에 대한 스토리,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상징성이 있다는 이유가 컸다. 그리고 '재생'이라는 단어가 재미있었다. 나는 '재생'이라는 단어를 'playback, regeneration, recycle'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재미있게도 이 부분은 앞서 이야기한 데이터-머신러닝-미래-상상의 관점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재생을 '포노토그래프'(https://ko.wikipedia.org/wiki/%ED%8F%AC%EB%85%B8%ED%86%A0%EA%B7%B8%EB%9E%98%ED%94%84)

라는 미완의 축음기를 다시 만들어 실현시키고자 했다. 포노토그래프를 재생(recycle)하고, 포노토그래프를 재생(playback)하게 하여, 청계천 일대의 사라져 가는 공간과 그곳에 깃든 소리를 재생(regeneration)하도록 한 것이다. 


3) 정량적 데이터, 정성적 데이터 

내 초기 개인작업들은 정량적인 데이터를 다른 매체로 확장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러다가 이어진 팀 트라이어드의 작업에서는 정성적 데이터를 다루게 되었다. 나야 컴퓨터를 전공하고 데이터를 다루는 게 업인 사람이지만 멤버들은 이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내 데이터 작업을 함께 이야기해보거나 3인의 형태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초반에는 많이 했었다. 작업 대상의 데이터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혹은 작업 대상을 어떻게 느끼는지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래서 도시재생장치에서는 도시, 지역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있었기에 정성적인 데이터-매체-물성에 대한 내용으로 주제가 쉽게 흘러갔다. 청계천 일대에서 수집한 물질들로 그 공간과 공간에 깃든 소리를 재생하는 레코드를 만든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3) 도시, 재생, 웅성거림, 거닐어보기 그리고 라디오

<도시재생장치>와  <도시재생장치#2 : Radiophonic Orchestration>의 교두보는 '웅성거림', '거닐어보기'와 같은 키워드였다. 도시를 주제로 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두 가지 사운드-움직임은 우리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였다. 서두에 적었던 '새로운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 보자'에 입각해서 '웅성거림', '거닐기'를 바라봤고 이 고민은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발전되기 시작했다. 물론 두 작업 사이에도 상당히 많은 아이디어들이 오갔다.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작업들이 많는데 돌이켜보면 이 작업들을 관통하는 +@ 키워드도 '웅성거림', '거닐어보기'였다. 라디오는 이 키워드를 구현할 수 있는 재미있는 매체였다. 각각의 라디오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소리, 기능적인 특성이 주는 매력도 있었고 여러 라디오를 공간의 맥락에 맞게 배치할 수 있는 이점, 다양한 소리를 출력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라디오 방송국 시스템을 만들어 해결했다. 설정한 주파수로 우리가 원하는 사운드를 송출할 수 있고, 그 주파수를 라디오가 잡아 사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공간의 라디오 무리들을 거닐어보며 입체적인 사운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4) 시간성, 공간성

"결국 우리가 하는 게 과거의 물건에 깃든 시간성에서 공간성을 재현하는 거니까"

단톡방에서 작업 아이디어를 나누다가 했던 말이다. 우리는 포노토그래프에서 라디오에이르기까지 과거의 매체를 기구/시스템적으로 재현하는데 매력을 느꼈었다. 그러면서 그 기구/시스템을 구동시키는 레코드(정성적 데이터)를 무엇으로 구성할지, 재현된 기구로 재현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았다. 이번 작업을 준비하고 작곡하면서 떠올렸던 큰 구조는 '자연-인공물'과 '라디오가 만들어온 역사적 흐름'속의 소리였다. 실제 인천에서 녹음한 자연의 소리로부터 곡이 시작하고, 도시의 여러 소리들이 나타나는 도입부가 존재한다. 그리고 실제 포노토그래프로 녹음되고 재생되었던 프랑스 동요 <달빛에>를 시작으로 라디오로 송출되었던 여러 역사적 연설들, 라디오 방송들(대개 정치인들의 특정 연설이나 전쟁에 관련된 안내방송)로 전체적이 구성을 만들어냈다. 시간성, 공간성의 측면에서 조금 더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시간축의 소리를 공간 축에 쌓는 것이었다. 구상했던 아이디어 중 하나는 공간의 소리를 특정한 주기로 수음하고, 그것을 다시 해당 공간의 라디오로 재생하는 방식의 시스템이었다. 아쉽게도 우선순위가 밀려나서 이번에 구현하지는 못했다. 먼저 포커스를 둔 것은 1) 짜여진 곡을 연주-퍼포먼스로 보여주기 2) 구성된 시스템을 이용한 즉흥연주 3) 공연장소 주변의 데크를 구획해 공간의 맥락에 맞는 소리 설치하기였기 때문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인천아트플랫폼 외부공간의 다양한 스팟에 라디오 시스템을 설치해서, 공간 전체를 거닐며 다양한 소리 경험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해보고 싶다. 


5) 데이터 파도 속에서 전파를 낚기

이전의 공연에서는 밀폐된 실내에서 진행했었어서 전파의 간섭이 적었었다. 그래서 생각 이상으로 잘 다듬어진 소리 군집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번 야외 설치/공연에서는 외부 전파 간섭이 심해서 사운드 컨디션이 생각처럼 좋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바람도 많이 불었고 주변엔 전파탑들도 조금 있었다. 그래도 이런 사운드 컨디션이 공간적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봤다. 재미있게도 여기나 저기나 공간에 주파수, 전파는 존재하고 있다. 그 강도, 세기가 다를 뿐이다. 이런 전파 데이터 파도 속에서 어떤 데이터를 건져낼 것인가가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내가 라디오를 들고 선보였던 퍼포먼스도 일종의 데이터를 낚는 행위였다. 공간에 산재되어있는 데이터, 그 파도 속에서 어떤 데이터를 건져낼 것인가, 특정 주파수를 맞춰 공명할 것인가, 노이즈로 취급할 것인가를 시시각각 고민하며 새로운 층위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였다. 공간을 거닐며 웅성거림의 일부가 될지 새로운 목소리를 낼지 선택하는 행위였고 이 경험을 관객에게도 제공하고자 공연장소 초입 안내데스크에서 라디오를 들고 갈 수 있도록 제안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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