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CTO 생활을 마무리하며
퇴사했습니다.
4년 반 가량의 스타트업 CTO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다행히 조인할 때 목표한 바는 다 이룬 것 같습니다. 글로벌 서비스도 2개를 만들어 런칭했고, 입사 때 벨류에이션의 6배 이상으로 후속 투자도 유치했습니다. 무엇보다 국내외 기관, 기업, 군, 연구소, 학교들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컨설팅해본 게 기억에 남네요.
동시에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고객들이 혁신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혁신에 목말라하고 있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회사 도메인이 자연모방, 그러니까 자연의 물리/화학/생물학적 메커니즘을 활용해 실생활의 문제을 해결해주는 것이었는데요. NASA와도 미팅을 해봤었습니다만, 여러 회사들의 문제들을 들으며 느낀 점은 그들이 실제로 풀어야 할 것은 혁신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직이나 비즈니스 차원의 작은 요소들이 병목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작은 가시와 그것들이 만드는 생채기를 치료하는 대신 불로불사의 약을 찾는 느낌인 거죠. 물론 이 페인 포인트를 해결해주는 사업 아이템에 대해서도 MVP, PMF검증을 했었습니다만,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사업화해보진 못했네요.
얻어가는 것도 많았습니다.
하나만 꼽자면, 10년가량 고심했던 AC2(Agile Coach Squared)를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배우고 익힌 걸 조직에 적용해봤던 게 큰 수확이었습니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도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 효율/효과적으로 문제에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또, 최근에 느낀 긍정적 변화는 주어의 변화입니다. '나'보다 '우리'로 생각하는 빈도가 더 많아졌습니다. 면접을 보면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그 과정에서 함께 자라고 잘하게 될 수 있을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더군요. 확실히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해상도가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AC2의 부작용도 있습니다. 다른 교육의 만족도가 매우 떨어진다는 것 ^^;; 조직 차원에서는 회사 가구 배치만 봐도 싸함이 느껴진다는 것?)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행선지 선택의 화두는 '가치'입니다. 내가 만들어내는 서비스/제품이 이 세상에 얼마나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기여하는가, 변화를 촉진시키는가가 제 고민이자 관심사입니다. 사실 이건 회사일뿐만이 아니라 제 미디어아트 작업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개의 서비스를 만들고, 수십 번의 전시와 공연을 했습니다만, 과연 이 창작행위들이 얼마나 고객과 관객을 추동시켰는지 돌아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관련해서 눈에 밟히는 문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컬처 덱의 마지막에 나오는 생텍쥐페리의 말입니다.
If you want to build a ship,
don't drum up the people
to gather wood, divide the
work, and give orders.
Instead, teach them to yearn
for the vast and endless sea.
아직까지는 제가 무엇을 동경하도록 꼬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부분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조직이, 다음 행선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