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생의 레시피 Jul 12. 2017

나는 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다

 며칠 전 상담소에서내담자는 문장의 첫 부분을 제시하고, 미완성된 뒷 문장을완성하는검사에서하염없이 시간을 쓰고 있었습니다.내담자가 다른 문항은 다 완성했으나쓰지 못하고 있던 문항은'나는' 의 다음 문장이었습니다.문장완성 검사는 연령이 높을수록 어려워하고 소요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연령이 높을수록 자신에 관해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이유이지요. 


박완서 선생님의 빈소에 인사를 드리러 가며 오래 전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일을 떠 올렸습니다. 선배와 일로 인해방문한 자택에서 손수 차를 내주시며물끄러미 저를 보시다 ‘글 쓸 사람인데 삼일이면 질 꽃밭에서 놀고 있느냐’ 고 말씀하셔서 저를 당황케 하셨습니다. 어릴 때 집안책꽂이에 있던 선생님의 ‘나목’ 이 좋아, '데미안'이 좋아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도아드님을 잃고 쓰신 ‘한 말씀만 하소서’에 깊이 마음 아팠다는 것도 말씀드리지 않았던지라 내심 많이 놀랐습니다. 


미사때 제일 위로를 받던 '한 말씀만 하소서. 네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라는대목을 선생님께 들려 드리고 싶을 정도로 저또한 그 아픔을 짐작 할 수 있는 사건의 가운데에 서 있을 무렵이기도 했습니다.하지만 그 자리에서 제가 글을 쓰고 있다고 말씀드리기도 민망한,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향인 제가 일 이야기외에 속내를 말씀 드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후 수상식장에서 선생님을 두 어번 뵈었고 그것으로 끝이었지만 제가 하고 있던 일을 접고, 심리학 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그 말씀은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돌아오며 문득 박완서 선생님이그검사를 하셨다면 ‘나는 - 후에 무엇이라 쓰셨을까생각해 보았습니다.'친구가 되어 주세요'의 앞장에 이태석 신부님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친필을 남기셨습니다.불과 몇 년 사이에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신 분들이 이 땅을 떠나가셨습니다. 


혹자는 여러 분야에 걸쳐 일성을 이루었던 분들이 떠나가신 이 땅의 앞날을몹시 우려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전하신'사람에 대한사랑'이 지극하기에다음세대 또한 밝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저는 상담소에돌아와 검사지를펴고, 이름란에 박완서라고 쓰고 '나는- 글로 사랑을 전하려 했다' 라고 써서 문장을 완성했습니다. 


그렇게아쉬움을 달래도 그분들이 떠나가신 이땅이 버려진 듯 휑하게 여겨지며,몹시도 애석합니다. 그러나 한편'나는 무엇이라고' 써서 완성할 수 있는 그대들을만날 수 있다면, 그 큰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정예서-'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사랑을 배우는 사람이다'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제가완성한 문장입니다. 비가 그치고여름이 스스로의 몸을 불사르는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는 이때어느때보다 평안하시길 바라게 되는 이런 날.모두 여일 하신지요.문득 안부를 묻고 싶어집니다.'나는 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을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며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의 특권, 경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