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세대 우리의 장국영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조정현

by 웃는식

1989년 하반기 혜성같이 등장한 남자 가수가 있었다. 이 당시 전성시대를 달리던 가수 변진섭의 뒤를 이을 신예! 하지만 그보다 나이로는 위였지만 그를 위협할 만한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던 그분이 바로 조정현이란 신인이었다. 그가 처음 불렀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라는 사실 당시 강변 가요제 수상자였던 가수 이상우에게 갈 상황이었다고 가수 조정현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높은 단가를 요구하던 작곡가는 그 곡을 이상우에게 주지 못하고 결국 신인 조정현이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의 주인공이자 스타로 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전주만 들어도 이 곡의 제목이 떠오르고 한 겨울 눈 내리는 가로등이 생각날 정도였던 명곡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조정현의 1집은 이 곡뿐만 아니라 '슬픈 바다',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아' 등 다수의 히트곡을 양산했다. 허스키하면서도 비음 섞인 중 저 고음까지 소화했던 조정현. 노래 실력이 월등했음에도 그에게 우선 된 것은 '꽃미남'이라 불리던 '외모'도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조정현은 이 사실에 마음 아파한다. 스스로 노래에 자신 있었다지만 대중은 외모를 너무 주목하는 바람에 자신의 본 실력이 반감된 것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이후에도 새롭게 음반 작업을 진행해 2집의 '비애'까지 히트시켰으나 소속사의 소행 이상의 만행으로 제대로 된 수익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마치 21세기 이승기 사태의 정황과 흡사한 사건이 당시에도 반복된 듯 여겨졌다. 노래하고 싶지만 오를 수 없는 무대. 아마도 재판 기간 중 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못했다는 것일 것이다. 방송 출연의 어려움을 라이브 클럽에서 대신 소화했던 조정현. 법정 소송에도 안타깝게 패소하고 간신히 3집 만을 제작한 후 미련 없이 가수직을 던져 버리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사업 수환이 좋았던 그는 큰 수익을 얻게 되었으며 다양한 업종의 일을 경험하게 된다.


2000년 초대 음악계의 마다스 손이었던 김창완 사단과 끝으로 음반을 낸 후 가요계와 잠시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된듯하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잊혀가는 가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원조 꽃미남 가수 조정현을 다시금 대중 앞에 선보인 프로가 '불타는 청춘'이었던 것 같다. 이후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하며 원주에 <클럽 본>이라는 라이브 카페도 운영하게 된 가수 조정현의 음악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다. 오래간만에 녹음도 해가며 신곡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에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월의 흐름 탓에 주름은 늘어가지만 변치 않는 목소리 장인 조정현의 신곡 발라드가 어서 세상에 발표되길 기다려 본다. 데뷔 35주년을 맞은 7080 세대의 발라드 왕자 조정현이 아직 살아 있음을 그의 팬들에게 보여주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한다.




#조정현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7080 대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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