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26(월)
"여보. 나 내일 7시에 깨워줘. 여보가 일어날 수 있다면"
어젯밤 아내에게 부탁을 하고 잤다.
"여보. 일어나야지"
"으어으어아아ㅓㅁ;ㅇ럼;ㅣㅏㅓㄹ"
일어나지 못했다. 7시에 알람이 울렸을 때까지만 해도 소윤이, 시윤이가 곤히 자고 있어서 그냥 좀 더 자고 차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아내에게 더 자겠다고 했는데 애들이 금방 깨버렸다. 그렇다고 다시 대중교통으로 선회하기에는 좀 늦은 시간이고. 애매했다. 거기에 일찍 일어난 애들을 데리고 거실로 나간 아내가 마음에 걸렸다. 아내의 몸상태가 최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난히 더 그랬다. 자리에서 일어나 저벅저벅 거실로 걸어 나갔다.
"여보. 왜 나와. 더 자"
"아니야. 여보 힘들잖아"
"아. 괜찮아. 여보는 더 자"
"아니야"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빠. 다시 자지 마여"
"그래. 알았어"
소파에 앉으니 눈꺼풀의 무게가 세배쯤 증가했는지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여보. 그냥 들어가서 좀 더 자"
"아 안 돼. 안 돼. 아빠 들어가지 마여"
"소윤아. 아빠 조금만 더 주무시라고 하자"
"아 안 되여. 싫어여"
"여보. 얼른 들어가서 자"
"그럴까? 소윤아 아빠 조금만 잘 게"
"난 아빠랑 놀고 싶은데"
"미안. 소윤아"
그대로 이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잤다.
"아빠. 8시 15분이에여. 이제 일어나여"
소윤이의 명랑한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소윤이 목소리를 녹음해서 알람 소리로 해 놓을까. 아니야. 그럼 소윤이 목소리가 싫어질지도 모르지.
홈스쿨 모임이 10시 30분부터 시작인데 집은 난장판이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는데 아침에 내가 잠깐 눈 붙이러 들어간 사이 소윤이가 색종이를 조각조각 오려서 방바닥에 뿌려 놓은 게 어질러짐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언제 다 치우고 언제 애들 밥도 먹이고 언제 반찬도 만드나 걱정이 됐다.
홈스쿨이 모두 끝나고 늦은 오후에 전화가 왔다. 다행히 모든 걸 무사히 준비하고 홈스쿨도 잘하고. 아내도 소윤이도 그럭저럭 기분이 좋아 보였다. 시윤이의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는 걸 봐서는 시윤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고.
퇴근해서 집에 도착했더니 하람이와 505호 사모님(하람이 엄마)이 와 있었다. 소윤이는 집에 돌아가려는 하람이를 붙잡고 나한테 어떻게 매달려서 노는지 보여주겠다고 열심이었다. 어깨에 거꾸로 매달리기, 손 잡고 허벅지 타고 한 바퀴 돌기, 앉은 다리부터 시작해 배, 가슴, 어깨를 차례대로 밟고 올라가기 등등을 신나서 보여주며 말했다.
"하람아. 너도 해 볼래?"
소윤아 왜 아빠 몸을 가지고 니가 생색을 내니. 다행히(?) 겁이 많은 하람이는 자기 아빠한테 가서 해보겠다며 내 몸을 이용하는 건 사양했다.
"여보. 오늘은 헬스 가?"
"아니 여보. 내가 이번 달에 등록을 안 했더라"
"아 그래?"
"그래서 그냥 이번 달은 안 하고 다음 달부터 다시 하려고"
"그렇구나. 아예 그냥 내년부터 해. 어차피 올해도 한 달 밖에 안 남았는데"
'어차피 내년에도 안 하지 않을까' 라는 말은 꿀꺽 삼켰다.
오늘부로 아내의 월요일의 공식 명칭이었던 [헬스프리데이] 의 사용을 중지하고 [그냥프리데이]로 변경하고자 한다. 이럴 거면 요일도 굳이 월요일일 필요가 없네?
오늘은 소윤이, 시윤이가 웃으며 엄마를 보내줬다. 시윤이는 내가 오기 전에 뭘 많이 먹었는지 평소랑 다르게 통 밥을 먹으려고 하지 않길래 진작에 식사를 마쳤다. 소윤이도 졸음이 넘치는 것 치고는 나름 열심히 식사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보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누워서 기도도 하고 책도 다 읽었는데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이따 엄마가 여보 비켜하면 아빠는 침대로 올라갈 거에여?"
"아니야 소윤아. 엄마는 이따 와서도 소윤이 옆에 안 눕고 침대에 누울 거야"
"왜여어어어어어. 엄마 옆에서 자고 싶어여어"
"아빠가 그때 얘기한 것처럼 이제 엄마는 침대에서, 소윤이는 바닥에서 자는 거야"
"으아아아아아앙"
"나중에 소윤이가 자다가 엄마가 옆에 없거나 방에 없어도 그냥 없나 보다 하고 자게 되면, 그때는 소윤이가 원하면 그렇게 할 수 있지. 그런데 지금은 소윤이가 연습하고 훈련하는 거야. 엄마가 옆에 없으면 자꾸 엄마 찾고 침대에서 내려오라고 그러고. 그러니까 엄마도 잠을 잘 못 자고 소윤이도 깨잖아. 이건 엄마, 아빠가 소윤이 미워하거나 혼내려고 하거나 소윤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야. 연습하고 훈련하는 거야"
소윤이는 별 대답이 없었지만 울음도 거둬들이고 있었다. 애를 많이 키워보면 애들한테도 기운이라는 게 느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윤이는 수긍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소윤이에게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사이 시윤이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점점 몽롱한 상태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둘을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안방의 커튼봉이 떨어지는 바람에 커튼을 치지 못한 상태인데 바깥 불빛은 물론이고 거실의 불을 켜면 그 빛도 들어갈 것 같아서 최소한의 조명만 켜고 거실에 체류했다. 소윤이는 기침을 매우 많이 했다. 그간 소아과 선생님의 진찰을 떠올려 보면 콧물 과다 분비로 인한 수면 시 잦은 기침인 것 같기는 했는데 안쓰러울 정도로 자주,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지 않고 잘 자는 걸 보면 소윤이도 나름대로 떨어져 자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건가? 아무튼 소윤이는 매우 잦은 기침을 하면서도 깨지 않고 계속 잘 잤다.
아내가 운동 없는 프리데이를 마치고 귀가해서 수다의 시동을 걸었는데 시윤이의 외마디 울음이 들렸다. 아내의 몸에서 발산되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은 느낄 수 있는 어떤 주파수가 있나? 다행히 시윤이도 잠깐 소리가 들렸을 뿐 완전히 깨지 않고 다시 자는 듯 고요했다. 아내와 수다를 마치고 자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혼자 자야 한다고 설교를 늘어놓은 게 무색하게 애들 옆에 누워서 자고 싶었지만 참았다.
소윤아, 아빠도 참고 있는 거야. 얼른 훈련을 마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