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25(주일)
당연히 애들은 먼저 일어났고 아내와 나는 일어나지 않았고 (내)엄마는 일어났고. 아내와 내가 일어났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 식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덕분에 아침부터 샤워도 하고 아내는 공들여 화장도 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교회에 가서도 소윤이 시윤이 모두 유아부 예배에 보냈다. 물론 (내)엄마가 따라가고 아내와 나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평소에는 안 챙겨 먹던 아침을 챙겨 먹어서 별로 점심 생각이 없었는데 식당에서 솔솔 풍겨오는 국 향기가 코를 자극했고 애들이라도 먹이고 가자는 핑계를 대며 식당으로 갔다. 추수감사 주일이라고 특별 메뉴로 육개장이 나왔다. 아내는 밥까지 말아서 먹고 난 밥 없이 국물과 건더기만 먹었다. 분명히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발버둥 치는 시윤이를 한쪽 무릎에 앉혀서 한 팔로 결박시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흡입한 열정은 과연 어디서 나온 걸까.
집에 갔더니 동생네가 와 있었다. 그 말인즉 보조 양육자가 두배로 늘어났다는 거다. 좀 앉아서 슬렁슬렁 TV 보다가, 교회 갔다 오면서 잠들었던 시윤이가 깨고 아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시윤이는 나오고 아내는 들어가서 눕고. 나도 좀 쉴 생각으로 아내 옆에 누웠는데 금방 잠들어 버렸다. 주일 오후 한복판을 낮잠으로 보내다니. 그야말로 꿀 같은 낮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면 좋을 텐데 누가 보면 낮잠 알레르기라도 있는 것처럼 무조건 낮잠을 거부하는 소윤이는 어제 12시 취침, 오늘 6시 기상으로 인한 피곤함에 허덕이고 있었다. 대표 증상은 빈번한 짜증과 무절제한 군것질. 정말 아침부터 쉬지 않고 군것질을 했다. '폭주' 라는 표현이 딱 적당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입 안으로 넣겠다는 게 오늘의 목표인 듯했다. 그만 먹으라는 아내와 나의 얘기는 소윤이의 고막에 닿기도 전에 공허하게 흩어지는 건지, 아니면 하이패스 차로처럼 막힘없이 반대편 귀로 통과되는 건지. 조금도 절제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누가 보면 아내랑 내가 집에서는 삼시세끼 밥만 꼬박꼬박 먹이고 다른 건 일절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리고 군것질을 탐닉했다. 시윤이도 덩달아서 하루 종일 입에 뭘 넣고 있었다. 소윤이처럼 사탕, 과자, 초콜렛 같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얘도 끊임없이 뭔가를 오물거렸다.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음식에 대한 사랑이었는데 너무 강력하게 유전되었구나. 소윤이는 결국 저녁 먹을 때 식탁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더니
"아빠. 졸려"
라며 힘없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때 재우면 여러모로 악순환이다. 아내와 나의 퇴근이 늦어지는 것도 물론 피하고 싶지만 소윤이한테도 좋을 게 없다. 평소보다 5시간 늦게 잔다고 5시간 늦게 일어나는 게 아니니. 그저 수면 시간만 줄어들 뿐이고 그럼 다시 다음날의 컨디션 난조로 이어지고 악화되면 몸살로 가는 거다. 어차피 밥은 먹는 둥 마는 둥이어서 그냥 식탁에서 내려놨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 졸렸는지 내려가서 놀더니 잠이 깬 것 같았다. 12시 취침에 6시 기상이었으니 당연히 집에 가는 길에 차에 타자마자 잠들 거라고 생각했다.
강소윤.
진짜.
강철체력.
진짜 체질은 나 닮았나 보다. 시윤이는 금방 떡두꺼비 같은 표정과 자세로 정신을 잃었는데 소윤이는 한참을 쫑알대며 우리와 대화를 나눴다. 설마설마하다가 나중에는
'이러다 진짜 안 자는 건가?'
하는 걱정이 살짝 머리를 스칠 정도로 오랫동안 멀쩡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대단하다.
그렇게 잘 버티다가
"양말 벗어도 돼여?"
를 시작으로
"나 잠들면 엄마가 눕혀 줘여"
와 같은 수면 예고 멘트를 발사한 후 마침내 소윤이도 잠들었다. 엄마가 싸준 짐들이 좀 있어서 일단 애들만 방에 눕혀 놓고 내가 한 번 더 주차장에 가서 짐을 가지고 왔다. 그 사이 아내는 살짝 뒤척이는 시윤이 옆을 지키겠다고 방에 들어갔었는데 그 짧은 시간(약 3분?)에 잠들었는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정말 잠들었다.
아내도 많이 피곤하긴 했나 보다.
그러더니 한 1시간 30분쯤 뒤에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나 많이 잤어?"
응, 꽤.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그냥 일찍 자랬더니 내일 홈스쿨 모임이 우리 집이라 반찬 한 가지라도 만들어야 한다며 자지 않았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 아내는 자러 들어갈 때까지 반찬은 만들지 않았다.
난 굉장히 푹 쉬고 온 느낌인데 아내는 많이 피곤해한다. 친정과 시댁의 차이인가. 아니지. 친정이든 시댁이든 아무리 편해도 내 집이 최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