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24(토)
나 홀로 방에 누워 있고 다들 거실에 나가 있었는데 시윤이의 울음소리가 귀에 꽂혔다. 지속적이고 짜증이 가득 섞인 불쾌감을 유발하는 울음소리였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쉽게 잠잠해지지 않았다. 더 자지 못하고 거실로 나갔다. 계란밥을 해달라는 소윤이의 요구에 파와 마늘과 함께 밥을 맛있게 볶아서 새우도 넣고 소고기와 계란도 구워서 얹어줬다.
"아빠. 나는 새우랑 고기 따로 주는 게 좋아. 왜 이렇게 했어"
라며 불평불만을 하는 소윤이에게 진심으로 빈정이 상했다.
"소윤아. 아빠가 소윤이 생각해서 열심히 만들어 준 건데 그렇게 얘기하면 아빠도 속상하지.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아빠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나도 기분 더 안 좋아졌어"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 없이 먹을 거면 먹지 마"
소윤이는 꾸역꾸역 집어넣기는 했지만 결국 다 먹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첫눈이 내렸길래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좀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침 먹고 시간 보내는 사이 눈은 금방 다 녹아버렸다.
"소윤아. 눈이 벌써 다 녹았다. 나가면 눈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벌써 다 녹아서여?"
"응"
"그럼 눈사람도 못 만들어여?"
"아마 그 정도 눈은 없을걸"
그래도 잠깐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쐴 겸 집 앞 편의점이라도 다녀올까 싶었는데 소윤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빠. 우리 뭐 맛있는 거 사러 갈까?"
"맛있는 거 뭐?"
"가서 골라야지"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나왔다. 시윤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소윤이는 손 잡고 걸어서 집 앞 편의점에 갔다.
"아빠. 이거 먹어도 되여?"
"아 그건 안 돼. 다른 거"
"그럼 이거는여?"
"그건 소윤이가 별로 안 좋아할 맛인데?"
"그럼 이거는여?"
"그건 괜찮아"
"아빠. 한 개만 고를 수 있어여?"
"그럼"
"다른 것도 한 개 더 먹고 싶은데"
"안 돼. 딱 한 개만"
"알았어여"
소윤이가 고른 건 미니 스니커즈였다. 하나에 400원짜리. 아내에게 자유시간도 줄 겸 잠깐 카페에도 들를 생각이었고 시윤이를 얌전하게 만들 무언가도 필요했다. 참깨스틱을 하나 골랐다.
"아빠. 왜 이 쪽으로 가여?"
"소윤아. 우리 카페 갔다 갈까?"
"카페? 왜여?"
"그냥. 가기 싫어?"
"아니여. 좋지여"
"그럼 우리 스타벅스 가자"
스타벅스로 가는 길에 한번 더 편의점에 들러서 시윤이 먹일 우유와 소윤이가 마실 핫초코를 하나 샀다.
"아빠 그건 왜 사는 거에여?"
"이거? 소윤이 가서 마시라고"
"에에엥? 소윤이?"
"맛있겠지?"
"네. 핫초코 맛있겠다"
계산을 하려는데 소윤이가 외쳤다.
"아빠. 시윤이 잔다여"
"어 진짜?"
두꺼운 패딩에 목도리까지 두른 채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유모차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시윤이는 집에 돌아갈 때까지 깨지 않았고 덕분에 스타벅스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얌전하게 앉아서 커피를 음미할 수 있었다. 소윤이도 초콜렛과 참깨스틱, 핫초코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산 주먹밥과 김밥으로 점심은 간단히 해결했다.
오후에는 부모교육(홈스쿨 모임)이 있었는데 들어보러 오는 가정이 몇 가정 있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간식으로 호떡을 만들어 가는 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낮에 호떡을 종종 만들어 먹곤 했다. 소윤이가 먹는 건 물론이고 만드는 과정도 굉장히 좋아해서 만들어 가기로 했다. 강시윤이 엄청난 방해꾼이 될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상상 그 이상이었다.
"여보. 평소에는 어떻게 했어?"
"어. 보통 시윤이 잘 때만 했지"
"아. 그랬구나"
앞으로는 시윤이가 함께 하는 상황에서 굳이 하지 않을 것 같다. 아내 혼자, 혹은 소윤이랑 둘이 했으면 후딱 끝냈을 일을 여러 명이, 그것도 한 명은 거의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방해꾼인 여러 명이 함께 하니 더 번잡스럽고 설거지도 많이 생성됐다. 어쨌든 성공적으로 호떡 만들기를 마쳤다. 소윤이도 만족스러워했다. 호떡 만들기에서 시간이 좀 지체되는 바람에 애초에 넉넉하게 잡고 목표로 삼았던 출발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렸고, 진짜 출발해야 하는 한계 시간도 금방 빠듯해졌다. 초인적인 부지런함으로 겨우겨우 시간을 맞춰서 출발했다. 소윤이는 잠들려고 했지만 다행히 아내의 오두방정으로 막아냈다.
처음으로 시안이네가 아닌, 시안이네가 다니는 교회에서 하는 부모교육이었는데 시안이네 말고 다른 가정들도 온 덕분에 애들이 많아져서 정신이 없긴 했지만 애들은 넓은 데서 원 없이 뛰어놀며 신나 보였다. 소윤이는 어색한 공간인 데다가 어색한 사람이 보여서 그런지 나랑 아내 사이에 한참 앉아 있었지만 시윤이는 혼자 너무 잘 놀았다.
"여보. 시윤이 어디 갔지?"
"그러게. 어디 있지?"
"아. 저기 있네"
혼자 풍선 들고 깔깔 거리며 놀고 있고 다른 누나, 형들 보며 놀고 있고. 시윤이는 집에 있을 때만 아내나 나한테 (주로 아내지만) 매달리지 밖에 풀어놓으면 정말 손이 안 가는 애다.
부모 교육을 마치고 나서는 신림동(내 엄마, 아빠 집)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잘 시간이 지났을 때라 신림동으로 가는 길에 소윤이, 시윤이 모두 잠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저녁은 굶기기로 했다. 교회에서 워낙 이것저것 군것질을 많이 했고, 특히 호떡을 거의 한 맺힌 듯 먹었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애석하게도 아내와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당연히 잘 거라고 생각했던 소윤이는 끝까지 버텼다.
"아빠. 몇 분 남았어여?"
를 수시로 물어보는 소윤이에게
"아직 한참 남았어"
라는 대답으로 일관했으나 소용없었다. 다시 한번 소윤이의 엄청난 체력에 감탄했다. 시윤이는 중간쯤 잠이 들었다가 차에서 내리니 살짝 깨길래 아내가 서둘러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내) 엄마와 아빠가 아쉬워하셨다.
"아니 뭐 벌써 재워"
"그래. 이따 재우면 되지"
엄마와 아빠의 성화에 시윤이도 그냥 밖으로 꺼냈다(?). 짜잔. 문이 열렸습니다. 야간근무의 문. 물론 아내와 나의 야간근무는 아니고, 야간근무 당사자인 할머니, 할아버지도 기쁨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저녁 먹고 나서 엄마가 얘기했다.
"오늘은 데이트하러 안 가?"
예의상 명확히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아내와 어느 정도 교감은 이룬 상태였다. 멍석을 깔아주시니 굳이 다시 접을 필요 있겠나.
"소윤아. 엄마, 아빠 갔다 올 게"
그렇게 야밤의 데이트를 감행했다. 손 잡고 좀 걷고 싶어서 옷을 따뜻하게 좀 입으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말을 안 듣더니 차에서 내리자마자 춥다고 오돌오돌 떠는 아내 덕분에 걷는 데이트는 물 건너갔다. 그래도 아내랑 오붓하게 앉아서 늦은 시간까지 오붓하게 얘기도 하고 그러니까 좋았다. 부작용이 있다면 이렇게 감질나는 데이트를 할 때마다 둘만의 여행에 대한 욕구가 폭발한다는 거다. 확실한 명분인 결혼기념일까지는 너무 염치없는 요구라 잠잠히 있을 생각이지만 과연 아내와 나의 본능이 그걸 기다려 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