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23(금)
어젯밤 아내는 매우 늦게 왔고 결국 난 샤워를 하지 못했다. 나쁜 아내.
애들이 깨우는 소리에 (사실 그 전에도 워낙 소란스러워서 완전히 잠든 상태는 아니었지만) 눈을 떠보니 8시 30분. 차를 가지고 갈 때 집에서 나가는 시간이었다.
"아 뭐야. 늦었네"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아내는 나 푹 자라고 애들과 함께 나가면서 방 문을 잠갔다. 애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제는 애들과 함께 나간 아내도 소파에 누워 잠들었다는 거다. 날 감금시켜 놓은 셈인 건가?
어제 아내가 나가기 전 소윤이가 얘기했다.
"엄마. 나 사과 먹기로 했는데 못 먹었다"
"이제 자야 되니까 내일 먹어"
"내일 일어나자마자?"
"그래. 일어나자마자 먹어"
"엄마. 또 6까지만 이렇게 하지 마여"
이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소윤이가 약속한 걸 내놓으라고 하면 아내가 맨날
"소윤아. 저기 바늘이 6에 갈 때까지만 기다려"
라고 하니까 소윤이는 그러지 말고 바로, 당장 내놓을 것을 약속하라는 거였다. 과연 오늘 아침 소윤이는 일어나자마자 사과를 먹었을까 아내는 소파에서 졸았다는데. 소윤이한테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다. 아내는 오전에 (옛)어린이집 등원 동기(?) 엄마들이랑 키즈카페에 간다고 했다. 소윤이, 시윤이, 소윤이 친구, 소윤이 친구 동생 애는 이렇게 네 명이라고 했다. 중간에 아내가 동영상을 보내줬는데 소윤이도 시윤이도 즐거워 보였다. 이제 시윤이도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노는 것 같다.
그 후로는 한참 동안 소식이 없었다. 퇴근해서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며 우리 집 창을 올려다봤는데 불이 꺼져 있었다
'505호에 갔나보네'
라고 생각하고 집에 올라갔는데
?
불이 켜져 있었다. 아마 그 사이에 집에 돌아온 것 같았다.
"소윤아. 어디 갔다 왔어?"
"하람이네"
"좀 전에 왔어?"
"네"
시윤이는 내가 소윤이를 안고 한참 서 있으니까 밑에 서서 팔 벌리고 서서 기다리다가 자기도 안아달라면서 소리(자기 딴에는 말)를 냈다. 그러고 나서 아내가 저녁 준비하는 동안 짧지만 알차게, 굵게, 밀도 있게 열과 성을 다해 놀았다. 소윤이의 이상한 숨바꼭질도 하고.
"아빠. 이번엔 아빠가 이겨여"
"가위 바위 보는 서로 모르고 하는 건데?"
"아. 그래도여. 아빠는 이거(가위) 내여"
"그래"
"가위 바위 보"
"오. 소윤이가 이겼네?"
"내가 이겼으면...음...아빠가 숨어여"
"소윤이가 술래 할 거야?
"네. 내가 꼭꼭 숨어라 할 게여. 숨어여"
"알았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아빠. 이번에는 내가 숨을 게여"
"알았어"
"아빠. 나 이불속에 들어가 있을 거니까 거기로 와서 찾아요"
"소윤아. 숨바꼭질은 모르게 숨는 건데?"
"아. 그래여? 난 이불속에 숨을 게여. 아빠가 내 위에 누워여. 알았지여?"
"알았어"
각본이 짜여진 숨바꼭질이랄까. 그래도 소윤이는 좋다고 깔깔거리면서 한참 숨고 찾았다. 시윤이는 누나 졸졸 쫓아다니면서 위치 다 알려주고. 온전한 숨바꼭질이었으면 소윤이가 엄청 화냈을지도 모른다. 밥도 먹이고 시윤이의 질척질척한 똥도 닦아주고 씻기는 것까지는 하지 못하고 교회에 가기 위해 집에서 나왔다. 다른 금요일에 비해서 수면 준비(?) 진척도가 꽤 더딘 상태여서 혹시나 아내가 고전할까 걱정이 됐다. 반주 끝내고 카톡을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두 번 정도 더 보냈는데 묵묵부답인 걸로 봐서 잠든 것 같았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며 집을 올려다봤는데 역시 불이 꺼져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가 나갈 때 그 상태. 포탄 한 방 맞은 전쟁터 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시윤이가 저녁 먹고 나서 미끄럼틀에 올라가더니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서 바닥에 내팽개쳤다. 책장 2 칸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집 치우기에 돌입했다. 그래야만 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라도 엉덩이를 붙이거나 여유를 가지면 내일 아침에도 똑같은 상태의 집을 마주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래도 보이는 것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는지 대충 눈에 보이는 건 금방 정리를 끝냈다. 설거지는 일단 미뤄뒀다. 괜히 소음 냈다가 아내나 애들 깰까 봐.
내일 부모교육 때 필요한 거 출력하고 일기 쓰고 그러고 있는데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아. 허무하다"
"오늘은 누구?"
"시윤이가 늦게 잤어"
"역시"
아내는 양치만 하고 다시 들어갔다. 아내가 들어가고 나서 얼마 안 됐을 때 방에서 소윤이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막 짜증을 내고 있었다. 꽤 한참 가길래 방에 들어가 봤는데 약간 잠꼬대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분명한 건 짜증을 내고 있었다. 잘 다독여서 진정시켜놓고 나왔는데 잠잠한 걸 보니 다시 잠들었나 보다.
요 몇 주 금요일 밤에 아내랑 시간 보내기가 힘들다. 아내는 먼저 하얗게 불태웠으니 오늘도 나 홀로 불태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