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22(목)
요즘 소윤이가 새벽에 너무 자주 깬다. 자주 깨는 건 둘째치고 깨면 꼭 엄마를 자기 옆으로 소환한다. 그러고 나서도 바로 자는 게 아니고 쉬 마렵다, 목마르다며 온갖 요구 사항으로 아내의 숙면을 방해한다. 새벽에 자다 깨서 누군가의 요구 사항을 들어준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자다가 잠깐 깨기만 해도 푹 자지 못한 것 같은데 거기에 몸을 움직이고 얘기까지 해야 하니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소윤이는 아내를 못살게 굴었다. 처음에는 잠결이었지만 길어지는 소란에 점점 정신이 들었다. 그냥 아내와 소윤이가 해결하도록 모른 체 하려고 했는데 소윤이가 자꾸 선을 넘었다. 짜증도, 요구도. 일단 아내에게 침대 위로 올라오라고 했다.
"소윤아. 오늘부터 엄마는 침대에서만 잘 거야. 소윤이는 바닥에서만 자고"
당연히 소윤이는 울음이 터졌다.
"엄마, 아빠가 소윤이 옆에서 자는 건 소윤이를 위해서 배려하고 양보하는 건데 소윤이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엄마, 아빠 자는 것까지 방해하고 있잖아. 그래서 안 되겠어. 이제 원래 규칙대로 엄마, 아빠는 침대에서 자고 소윤이는 바닥에서 자"
"싫어어어어어. 엄마 내 옆에 누워어어어어"
"소윤아. 우는 건 괜찮은데,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소윤이 옆에 눕지 않아"
아내를 따라 침대 위로 기어 올라오려는 시윤이에게도 어쩔 수 없었다. 소윤이와의 형평성을 위해서.
"시윤이도. 올라오지 말고 내려가서 자"
다 알아들은 시윤이도 울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몇 시에 이 난리인 건가 휴대폰을 봤더니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소윤이가 스르륵 침대 위로 올라와 아내 옆에 눕길래 다시 얘기했다.
"소윤아. 내려가"
또 울음이 터졌다. 소윤이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일단 아내가 너무 잠을 못 잔다. 자다 말고 딸내미 수발드느라 에너지를 다 쏟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원래 일어나려고 했던 시간까지는 뭐 제대로 자지도 못한 것 같다. 무의미한 알람이 울렸다. 나도, 아내도, 애들도 다 깨어 있었다. 아내랑 애들은 더 자야 온전하게 하루를 보낼 것 같아서 혼자 빠져나왔다.
"여보. 더 자. 소윤이도 더 자고. 시윤이도"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옷 갈아 입고, 커피 타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영 마음이 찜찜했다. 아무리 정당한 훈육이라고 해도 그 새벽에 펑펑 우는 소윤이가 불쌍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출근 준비를 다 하고 다시 방에 들어갔더니 소윤이는 어느새 침대 위, 내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있었다. 날 보더니 소윤이가 울먹이며 얘기했다.
"아빠아. 인사도 못 하고 이게 뭐야"
하아. 어쩜 저런 표현을 구사할까.
"그러니까 소윤아. 아빠가 소윤이 미워서 그러거나, 혼낸 건 아니야. 소윤이한테 알려주려고 그런 거야. 알지?"
"응"
"이제 엄마, 아빠는 침대에서 자고 소윤이는 바닥에서 자는 거야?"
"응. 잘 때도 혼자 누워서 자는 거에여?"
"소윤이가 잠들 때까지는 옆에 누워 있을게. 잠들고 나서는 깨도 이제 엄마 부르지 마"
"네"
인사를 나누고 나가려는데 시윤이가 방 문을 붙잡고 서서 나를 배웅했다.
"압빠아아. 읏냥"
허리를 굽신거리며 배꼽인사까지 곁들였다.
시윤아, 미안. 어쩔 수 없이 너도 침대에는 못 올라오게 됐다.
1-2시간은 더 자야 다들 괜찮을 텐데 걱정하며 출근했는데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버스든 지하철이든 앉기만 하면 졸았다. 9시쯤 아내와 통화를 했는데 다들 더 자지는 못했다고 했다. 다행히 소윤이의 목소리는 매우 밝았다.
"아빠"
"응. 소윤아. 기분은 괜찮아?"
"네에. 지금 밥 먹고 있어여"
"그렇구나"
"아빠. 이따 엄마는 오랜만에 애들 없이 은혜 이모랑 미선이 이모 만나러 가고. 나는 잘 때만 아빠가 옆에서 재워주고 엄마는 침대에서 자기로 했어여"
"그랬어? 잘했네. 저번처럼 엄마 가지 말라고 우는 거 아니야?"
"그때는 미리 말 안 해줘서 그런 건데여?"
소윤이는 밝은 목소리로 포부를 밝혔다.
아내는 오늘 밤에 애들 없이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면서, 아니다. 만나러 가기로 정하고 나한테 얘기한 건 아니고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는데 나도 참석해도 되겠느냐고 묻는 형태이긴 했다. 안 된다고 한 적도, 그럴 생각도 없는 형식적인 절차이긴 했지만.
지난번 미리 말해 놓지 않아서 소윤이에게 큰 낙심을 선사했던 걸 교훈 삼아 오늘은 진작부터 얘기해놓은 모양이었다. 오후에는 스타필드에 간다며 전화가 왔다. 나의 수고로 아내가 편히,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며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책을 몇 페이지 읽지도 못하고 꾸벅꾸벅 졸며 퇴근했다. 집에 왔더니 장모님이 와 계셨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밥을 먹고 있었는데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아내가 나갈 준비를 하자 소윤이는 아침의 다짐과는 다르게 울며 아내를 붙잡았다.
"엄마아아. 가지마아아아"
오늘은 시윤이도 가세했다.
"음마아아아아아. 음마아아아아아아"
아내와 장모님이 나갈 쯤에는 두 녀석 모두 울음이 최고조에 달했다.
"엄마아아아아악. 엄마아아아아악"
"음마아아아아악. 음마아아아아악"
놀라운 건 나의 마음은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스스로
'아. 이 정도까지는 초탈했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 울어라 어차피 밤새 울지도 못할 거.
"소윤아. 많이 슬프지? 아빠도 소윤이 마음은 이해가 돼. 그러니까 실컷 울어도 돼. 그런데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안 온다는 거 알고 있지?"
소윤이는 점차 울음이 줄어들고 자기 실리(책 고르기)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시윤이는 끝까지 현관문 앞에 앉아서 오열하고 있었다. 오라 그래도 싫다 그러고 안아준대도 싫다 그러고 누나랑 아빠만 자러 간다고 협박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소윤이가 책도 다 고르고 나에게 안겨서 정말로 자러 들어갈 것 같으니까 그제야 나를 향해 팔을 뻗으며 다가왔다. 손 잡고 들어가자니까 기어코 자기도 안아달라길래 양 팔에 한 명씩 안고 방에 들어갔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소윤이 마음에 상한 구석이 있다면 잘 아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어른의 언어로 기도를 해줬다.
"소윤아. 우리 오늘 뽀뽀도 못 했는데 뽀뽀 한 번 하고 잘까?"
"네"
"소윤아. 잘 자. 사랑해"
"아빠. 나도 사랑해여"
"시윤이도 아빠랑 뽀뽀할까?"
"으"
"시윤이도 잘 자. 사랑해"
"으"
오늘은 둘 다 번개같이 잠들었다. 몇 번 소윤이의 기침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살짝 우는 소리도 들렸는데 아직까지 나나 아내를 찾지는 않았다. 아내는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자유부인 친구들을 자유부인 신분으로 만나니 얼마나 신났을까. 오늘 멤버는 늘 아이들을 데리고 만났으니 더 할 거다.
여보, 실컷 놀고 와.
그런데 나 샤워가 너무 하고 싶은데 애들 깰까 봐 못 하고 있어.
포스트맨은 신촌을 못 가고 난 화장실에 못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