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에 초 꽂고 노래 불렀으면 됐지 뭐

21.04.04(주일)

by 어깨아빠

아내와 나는 아주 늦게 일어났다. 아내가 급히 아침을 차려 주고 교회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꽤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밀도 있게 움직였다. 애들이 밥 먹는 동안 옷을 다 찾아 놓고, 다 먹자마자 바로 입히고. 이렇게 바쁠 때는 혼자 알아서 잘 하는 소윤이가 참 듬직하다. 동생들은 다 입혀 주고 자기만 혼자 입으라고 하는 게 서운하다고 할 때가 많긴 하지만.


“소윤아, 미안. 오늘은 너무 바빠서. 미안해. 알았지?”


소윤이는 새싹꿈나무 예배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오늘 갑자기 그런 건 아니고 다시 교회에 갈 때부터 그 얘기는 계속했다. 물론 아이들끼리만 있어야 하니 괜히 코로나가 더 걱정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소윤이의 의도가 궁금했다. 아니, 소윤이가 ‘새싹꿈나무’보다는 새싹꿈나무 ‘예배’를 기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이번 주는 부활절이고 하니 보내볼까 싶었다. 어제 아침에 슬쩍 불러서 ‘새싹꿈나무 예배에 가고 싶은 이유’에 관해 나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오늘 아침에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불러서 기도를 해줬다. 애들 기도를 하고 나니 애들이 문제가 아니라 나나 잘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시윤이는 차에 타서 출발할 때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예배를 드리는 게 싫다고 했다. 시윤이는 소윤이의 한마디에 누나를 따라가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시윤아. 그런데 누나는 내년에는 여덟 살이 돼서 새싹꿈나무 예배 못 드려. 그럼 시윤이랑 같이 드릴 수 있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야”


오랜만에 소윤이와 시윤이를 새싹꿈나무 예배실에 데려다주고 본당으로 내려왔다. 서윤이는 아주 쌩쌩하다가 중간쯤 갑자기 손가락을 빨며 활동을 멈췄다. 재워 볼 생각으로 아기띠를 했지만 결국 잠들지는 않았다.


새싹꿈나무 예배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2부는 나이별로 반을 나눠서 여러 활동을 한다. 오늘은 부활절이라 계란 꾸미기였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직접 꾸민 계란과 간식 겸 선물인 도넛을 들고 왔다. 시윤이가 자기 반을 따라가려면 어떤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럼 또 누나랑 완전히 분리되니까 싫은가 보다. 오늘도 누나 옆에 앉아서 계란을 꾸몄다고 했다. 결국 누나밖에 없으면서, 평소에 말 좀 잘 듣지.


아내가 점심에는 라면을 먹자고 했다. 아내도 나도 배가 엄청 고팠다. 애들은 아보카도를 절반씩 넣은 호화 계란밥을 해줬다. 소윤이가 오늘은 자전거를 꼭 타고 싶다고 했다.


“아빠. 오늘은 축구 가지 마여”

“왜?”

“저랑 자전거 타여”

“소윤아. 그럼 교회 갔다 와서 자전거 타면 되지”


그리하여 점심을 먹고 바로 나갔다.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갈까도 생각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개방을 안 한다고 해서 그냥 단지 안 놀이터 앞에서 탔다. 사방으로 넓은 곳이 아니고 길게 뻗은 곳이다 보니 아무래도 연습하기에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소윤이도 지난번처럼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자전거 실력은 더 늘었다. 아직 방향 전환은 자유롭지 않지만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쭉쭉 나가는 건 굉장히 능숙해졌다.


오히려 시윤이는 지난번보다 더 감을 못 잡는 듯했다. 겁이 많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뒤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으면 곧바로 페달질을 멈췄다. ‘넘어져도 괜찮다’, ‘페달 구르는 걸 멈추면 넘어지는 거다’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쉽게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지난번만큼 의욕이 없어 보였다.


자전거는 조금 타다 말고 놀이터에서 계속 놀았다. 중간에 아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나왔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목이 마르다고 해서 물을 좀 갖다 달라고 했다. 서윤이는 밖에 나와서 그런 건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아내에게 안겨서 계속 생글생글 웃었다. 그래도 데리고 와서 안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빠와 놀이터에 왔을 때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게 하기 위해서.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오더니 오늘은 날씨가 아주 화창했다. 그래도 바람이 좀 불고 기온이 엄청 높지는 않아서 약간 쌀쌀했다. 그것도 그렇고 맨날 둘이 앉아서 심심하게 노는 게 미안하기도 해서 애들은 집에 두고 나왔다. 애들한테 안 미안하려니 아내에게 미안한 짓을 하게 됐지만. 막상 나와 보니 날씨가 생각보다 너무 좋고 햇볕이 내리쬐는 곳은 별로 춥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축구장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분이 있었다.


“여보. 스피커폰이야?

“아니? 왜?”

“뭐해?”

“그냥 있지. 왜?”

“아니. 날이 생각보다 너무 따뜻하네. 그리고 다른 집사님 애들도 나온 애들이 있어서 소윤이랑 시윤이 데려다주고 가려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아, 그래? 알았어. 애들한테 한 번 물어볼게”


잠시 후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려다주고 갔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다른 애들이 많지는 않았다. 초등학생 남자 형제 두 명, 소윤이보다 나이 많은 여자아이 한 명, 시윤이랑 동갑인 남자아이 한 명. 소윤이와 시윤이는 잘 어울려서 놀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윤이와 시윤이랑 동갑인 남자아이 둘만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남자 형제 두 명은 일찍 갔고, 소윤이는 언니랑 둘이 놀고 있었다.


“소윤아. 이리 와 봐”


멀찌감치서 놀던 소윤이를 불렀다. 왜 동생들만 따로 있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사실 물을 것도 없었다.


“소윤아. 동생도 잘 챙겨? 알았지? 시윤이 혼자 두지 말고 같이 데리고 놀아. 알았지?”

“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시 잘 놀았는데, 다 끝나갈 무렵 시윤이가 울었다. 다시 가서 상황을 물었다.


“시윤아. 왜 울어?”

“아니, 누나가아 저를 안 챙겨떠여어”


갑자기 소윤이가 치고 들어왔다.


“잘 챙겼어여어”


굉장히 반항적인 말투와 함께.


“소윤이는 일단 조용히 해 봐. 시윤아. 무슨 일이야?”

“아니. 누나들이 저한테 저기서 ‘너는 못하지, 너는 못하지’ 이러면서 놀렸어여어”


소윤이에게도 사실 여부를 확인했고, 소윤이도 시인했다. 바로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에게는 ‘집에 가서 아빠랑 따로 얘기하자’고 미리 알렸고, 소윤이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 집에 가는 동안 울었다.


우리 집에서 하면 안 되는 말과 행동이 여러 개가 있지만 그중 ‘절대’ 용납이 안 되는 게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폭력과 놀림이다. 집행유예가 없다. 바로 실형을 선고 및 집도한다. 거기에 다른 사람과 합세해 다수가 일인을 향해 놀렸으니, 소윤이도 잘못의 무게는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윤이와 방에 들어갔다.


훈육을 마치고 나온 소윤이는 혼자 현관에 서서 우울하게 울고 있었다. 잘못해서 혼났다는 건 잘 알아도, 어쨌든 아빠한테 혼나면 슬프기 마련이다. 소윤이를 불러서 안아주고, 얘기했다.


“소윤아. 많이 속상하지? 괜찮아. 혼난 건 혼난 거고 앞으로 안 그러면 되는 거야. 아빠도 알고 있어. 소윤이가 시윤이 챙기느라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그거 쉬운 일 아니라는 것도 알고, 소윤이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아빠가 보기에도 엄청 기특할 만큼 동생들 잘 챙기고 있어. 엄청 좋은 누나고 좋은 언니야. 오늘은 소윤이가 실수한 거고, 다시는 해서 안 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아빠가 엄하게 다스린 거야. 알지? 소윤이 지금도 엄청 잘 하고 있어. 아빠가 다 알아”


그러고 좀 더 안아줬다. 감정이 개입하지 않은, 정당한 훈육은 뒤가 깔끔하고 개운하다. 소윤이도 금방 기분을 되찾았다.


아내랑 서윤이는 집에 없었다. 처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다녀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잠시 찍고 왔다고 해야 할까. 나중에 들어보니 애들 내려주고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서 고민하다가 갔다고 했다. 마침 서윤이도 자고 있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샤워를 시켰다. 씻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씻으면서 소윤이의 상한 마음이 좀 더 잘 풀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물론 그때도 이미 웃음을 찾은 뒤였지만. 어쨌든 샤워하는 동안 많이 웃었다.


오늘이 서윤이의 진짜(?) 생일이었다. 아직 서윤이가 뭘 모르기도 하고 먹지도 못하니 미역국도 안 끓였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서윤이 생일을 핑계 삼아 어디라도 갔다 왔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것도 어렵고. 그래도 그냥 이대로 넘어가는 건 아쉬웠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한 건 아니고 그냥 아내가 사 온 조각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한 번 더 불렀다. 오늘의 주인공 서윤이는 노래만 받고, 케이크는 언니와 오빠가 다 먹어 치웠다.


서윤아. 첫 생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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