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3(토)
서윤이의 첫 생일은 내일이지만, 기념 모임은 오늘 하기로 했다. 나랑 시윤이는 머리를 해야 해서 오전에 미용실에 다녀왔다. 소윤이한테도 선택권을 줬다. 집에 있어도 되고 미용실에 따라가도 되고. 소윤이는 같이 가겠다고 했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 왜? 무슨 일 있어?”
“여보랑 애들이 가기 전에 화장실에 갔어야 했는데”
“아, 서윤이 때문에?”
“어. 나한테서 떨어지질 않네”
“그러게. 그럴 걸 그랬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차라리 언니, 오빠가 있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엄마랑 둘이 남은 서윤이는, 엄마를 향한 접착력이 아주 강해지기도 한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어디든 가는 건 이제 전혀 힘들지 않다. 아니 물론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신경을 써야 하니 좀 피곤하겠지만, 이제 말도 통하고 잘 들어서 극한의 체력 소모가 생기지는 않는다. 작고 좁은 미용실이라고 해도. 시윤이는 펌이 끝날 때쯤 되니 한계가 왔는지 의자에 앉아 몸을 베베 꼬기는 했다.
예약 시간이 딱 점심때라 가는 길에 김밥을 사서 차에서 먹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없어서 먹지 못하고 들어갔다. 아, 나는 운전하면서 먹었구나. 소윤이와 시윤이는 배고픔을 꾹 참았다가, 다 끝내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차에 앉아서 김밥을 먹었다. 둘이 차에 앉아서 김밥을 집어먹는 게 뭔가 귀엽기도 하고, 괜히 기특하기도 해서 초코 우유를 하나씩 사줬다. 나도 배가 덜 차서 빵을 하나 더 사 먹었다.
“아빠. 그건 뭐에여?”
“이거? 빵”
“왜 샀어여?”
“그냥. 아빠 배고파서”
“아빠는 김밥 먹었는데 왜 배고파여?”
“그러게”
그걸 아빠한테 물어보면 안 되지. 아빠 위한테 물어봐야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일찍 일어났다. 소윤이는 6시도 안 돼서 일어난 것 같다. 오늘은 늦게까지 밖에 있어야 하니 차에서라도 눈을 좀 붙이라고 했다. 시윤이는 돌아오는 길에 푹 잤다. 소윤이도 눈을 감고 자는 것 같길래, 진짜 자나 싶었는데 커피를 사려고 카페에 차를 대는 순간 소윤이가 눈을 떴다. 그때 바로 알아차렸다.
‘안 잤구나’
자기 나름대로는 자다 깬 ‘연기’를 한 것 같은데, 티가 났다.
“소윤아. 잤어?”
“네”
“안 잔 거 같은데”
“잤어여”
“그래? 아닌 거 같은데. 솔직히 말해 봐”
“조금 잔 거 같아여”
“에이 거짓말이잖아. 아빠가 다 아는데”
오히려 시윤이는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서 깨더니
“아빠. 저는 못 잤어여”
라고 말했다.
“시윤아. 너 엄청 푹 잤어”
“아닌데”
저녁에 모이는 거라 좀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아니면 벌써 세 번째이기도 하고, 가족들끼리만 모이는 거라 그런 걸지도 모르고. 또 시윤이 첫 생일 때와 같은 장소, 같은 방식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특별히 서윤이 기분을 좋게 하려고 신경 쓰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보내다가 모임 장소로 출발했다.
가기 전에 옷을 입고 준비를 하는데, 하얀 린넨 셔츠라 속이 너무 비쳤다. 실상은 별로 주요하지 않으면서 주요 부위인 척하는 곳이 너무 잘 보였다. 한쪽은 주머니로 가려졌는데 나머지 한 쪽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흰 반팔 티셔츠를 입었는데, 가려지기는 했지만 영 태가 안 났다. 아내가 비슷한 색 테이프를 붙여 보자고 했다. 붙이고 나니 보이지도 않고 붙인 티도 안 나서 좋기는 했다. 다만 그 과정이 뭔가 굴욕적이었다. 아내 앞에서 서서 아내가 한 땀 두 땀 붙여주는데 굉장히 수치스러웠다. 옆에서 소윤이와 시윤이가 보고 깔깔거렸다.
소윤이, 시윤이 첫돌 때는 할머니들에게 기도도 부탁드리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아내와 내가 다 알아서 했다. 기타 반주는 내가, 기도는 아내가, 영상도 아내가(아이폰이), 메시지도 내가. 마지막 축도만 형님(아내 오빠)에게 부탁했다.
서윤이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느낌과 감사함을 주제로 10분 정도 메시지(한글로 적절한 단어가 뭘지 모르겠다)를 전했다. 집에서도 일부러 계속 읽었다. 좀 무뎌지려고. 괜히 읽다가 감정이 차올라서 눈물이 날까 봐. 그건 너무 창피한 일이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면 모를까 가족 앞에서 눈물이라니. 진짜 읽을 때도 원고만 보고 기계처럼 읽었다. 위기의 순간을 무사히 넘기다가 마지막에 절정의 고비가 살짝 찾아왔지만 무난하게 넘겼다. 다행이었다.
아, 맨날 새벽마다 깨서 자는 거 방해하는 녀석이 뭐가 예쁘다고. 이렇게 청승을 떨게 되나.
소윤이와 시윤이도 동생을 향한 편지를 직접 쓰고 낭독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소윤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쓰고 읽었다. 아내의 첨삭(?)이 조금 있었다고는 해도, 감동이었다. 부모의 사랑이야 서윤이가 나중에 때가 되면 다 알게 되겠지만, 언니의 사랑은 혹시라도 모를까 봐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서윤아. 넌 정말 좋은 언니를 뒀다.
아직 글을 배우는 중인 시윤이는 아내가 많이 도와줬다. 시윤이의 생각을 아내가 대신 써 주고, 아내가 읽어주면 시윤이가 따라서 읽었다. 능수능란하게 쓰고 읽어내는 누나 뒤에 하려니 다소 자신감이 떨어진 듯했지만, 여러 사람의 격려로 무사히 끝까지 읽었다. 서윤아. 넌 언니만큼 좋은 오빠도 뒀어.
서윤이는 내내 기분이 괜찮았다. 물론 사진을 찍으려고 한곳에 가만히 앉혀 놓으려고 하니 그건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래도 자기 축하해 주는 걸 아는지 제법 생글생글 많이 웃었다. 요즘 몇 번 원래 자기 음식이 아닌 음식의 맛을 보더니, 앞에서 누가 뭘 먹기만 해도 일단 그걸 달라고 해 본다. 특히 먹어 본 음식이면 물러서는 법이 없다. 오늘도 식전 빵을 보더니 자기도 그걸 먹겠다면서 밥은 거들떠도 안 봤다. 아무리 봐도 타고난 고집이 센 것 같다. 거기에 후천적인 환경도 ‘오냐오냐’하며 키우기 딱 좋고. 정말 걱정이다. 나중에 어떻게 혼내지.
예배도 드리고, 밥도 먹고, 사진도 다 찍고 나서도 조금 더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랑 열심히 놀았고 서윤이도 넓은 곳을 마음껏 기어 다니며, 어딜 가도 환영받는 시간을 누렸다. 워낙 늦은 시간이라 금방 졸려졌는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집에 갈 때까지도 비가 많이 왔다.
뭐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고 간단히 가족들끼리만 모였던 건데도 집에 돌아오니 피로가 쏟아졌다. 서윤이의 생일을 뭔가 더 격렬하게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 서윤이가 아쉬웠다. 주인공이 알아듣지 못하니 무던한 듯 지나갔지만 참 감사한 1년이었다. 어디 안 아프고 잘 자라 준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하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제 1년이나 살았으니 밤에는 좀 더 푹 자 줬으면 하는 정도.
아내와 나는 보통의 토요일 밤과는 다르게 굉장히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과연 돌 지난 서윤이의 밤은 어떨까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