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9(금)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나갔다 왔다. 집에 가만히 있기가 힘든 날씨기는 하다. 오늘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아니었고, 집 앞 분식집에 늦은 점심 먹으러 나갔다고 했다. 날도 좋고 하니 나가서 바람도 쐬고 끼니도 해결하고 커피도 한잔하고 그런 모양이다.
청바지에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소윤이가 유독 커 보였다. 거짓말을 많이 보태긴 했지만, 느낌으로만 치면 정말 ‘대학생’ 같았다. 이제 말이 통하는 일곱 살이 되었고, 밑으로 동생이 두 명이나 있는 맏딸이지만 여전히 내 마음의 지분율은 굉장히 높은 녀석이다. 소윤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편으로는 참 다행스럽다. 7년의 시간 동안 소윤이랑 쌓은 추억이 꽤 많다. 6살의 소윤이를 잘 알아야 7살의 소윤이도 반가운 거다. 부모 자식 사이라 다른 관계보다는 훨씬 거저먹는 게 많기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시간과 경험의 공유가 곧 깊이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소윤이가 크는 건 아쉽지만, 크는 동안 옆에 있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아쉬운 것도 다 보니까 아쉬운 거지 보지도 못하면 아쉽지도 않을 거다.
지난 3월 생일이 지나도 밀려드는 누나의 생일 선물에 다소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던 시윤이가 4월이 되자 또 시련을 맞았다.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서윤이의 첫 생일 선물이 들어왔다.
“엄마. 자꾸 누나랑 서윤이 선물만 많아지네?”
서윤이 생일 선물로 들어온 돌반지를 끼워 보더니 엄청 좋아했다고 했다. 괜히 짠하다. 시윤이 생일도 드디어 얼마 안 남았다며 위로는 하고 있지만, 걱정도 된다. 시윤이가 얼마만큼 기대를 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일단 아내랑 나부터라도 시윤이의 선물을 좀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할 거 같다. 가뜩이나 가운데인데 어쩌다 생일도 제일 느리게 돼서. 시윤아, 그래도 넌 우리 집의 유일한 아들이니 아빠가 나중에 특권을 많이 줄게. 아빠랑 목욕탕도 가고, 아빠랑 축구도 하고. 응, 맞아. 아빠의 특권이네?
오늘 저녁은 카레였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을 때 아내는 역시나 바빴다. 슬쩍 봤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거 같았다. 금요일이라 교회를 가야 하는 걸 아내도 알기 때문에 굉장히 부지런히 준비하는 게 느껴졌다. 집에서 7시 40분에 나가야 하는데 7시 30분쯤 식탁에 앉았다. 뭐 마음만 먹으면 3분 안에도 한 그릇을 비우는 게 가능하니 괜찮았다. 아내는, 급히 먹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 와중에도 바로 먹지는 못했다. 서윤이도 의자에 앉혀 놨는데 이제 거기 앉으면 1분 안에 뭔가를 입에 넣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울거나 짜증을 낸다. 아내가 서윤이 먹을 밥도 데우고 있기는 했는데 공백이 좀 있었다. 카레가 묻지 않은 쪽의 내 밥을 조금씩 떼어 줬다. 급하니까 그냥 울게 두고 먹어도 되긴 했지만 굳이 울리고 싶지 않았다. 오물오물 그렇게 맛있게 잘 먹는데.
정작 아내는 입맛이 없다고 했다.
“여보. 나는 이따 그냥 좀 차분히 먹고 싶다. 애들 재우고 나와서 먹든가 해야겠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 주는 밥’이고 세상에서 제일 먹기 싫은 밥이 ‘내가 땀 흘려 차린 밥’이다. 아내의 심정이 무엇인지 잘 안다. 물론 난 땀 흘려 차려 주고 땀 흘려 먹기도 즐겨 하는 별종이지만.
교회에 갔다 와서 아내랑 수다를 떨었다. 요즘 시윤이랑 공부할 때 뭐가 힘든지, 내일은 애들이랑 뭘 하면서 놀지, 서윤이는 밤에 잠도 안 자는데 왜 마냥 예쁘기만 한지 등등. 아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음, 수다와 치킨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랬다는 음 아무튼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아내한테 제안해 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너무 늦어서 그냥 날려보냈다.
치킨아 가렴. 다른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