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0(토)
실제로 그랬겠냐마는 요 몇 주는 토요일마다 비가 온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맑고 화창한 토요일의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어디든 나가서 기분 좋게 놀고 와야겠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오전에는 아침 먹고 좀 쉬다가 (표현만 쉬는 거고, 실제로는 실내 육아) 오후에 나갔다.
어디를 놀러 갈까 고민하다가, 주말이라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을 거 같았다. 소윤이도 꼭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오늘은 그냥 단지 안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 오랫동안 베란다에 주차가 되어 있던 푸쉬카도 가지고 나갔다. 서윤이를 태워 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시윤이가 그걸 타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서 푸쉬카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며 혼자 노는 게 시윤이의 첫 번째 일상이었다. 오늘 앉혀 보니 앉기가 불편할 정도로 키가 커서, 푸쉬카가 많이 작았다. 그래도 시윤이는 좋아했다. 워낙 탈것을 좋아하는 시윤이에게 새로운 탈 것이라서 그런 거 같기도 했고, 아기처럼 아빠가 밀어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애들이 아침을 늦게 먹어서 따로 점심을 먹이지는 않았다. 대신 옥수수와 계란을 싸 가지고 나왔다. 놀이터 근처 의자에 앉아서 그걸 먹었다. 요즘엔 밖에서 뭘 먹는 게 하도 눈치가 보이는 시대라 기분이 덜하긴 했지만, 꼭 소풍 나온 느낌이었다. 서윤이도 옥수수 알맹이만 쏙쏙 빼서 줬더니 아주 잘 받아먹었다. 사실 요즘은 받아먹는 게 아니라 강탈해가는 수준이다. 자기만 안 주면 난리가 난다. 주면 천사가 따로 없다.
놀이터에서도 놀고 킥보드도 타고 잠시 한살림에도 들렀다가, 상가 앞 광장에서도 놀고 그랬다. 이 모든 시간 동안 서윤이가 유모차와 푸쉬카에 번갈아 앉으며 잘 있었다. 자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려가겠다고 짜증도 안 냈다. 엄마, 아빠랑 장난도 치고 언니와 오빠 노는 거 보며 웃기도 하고. 밖에서 거의 3시간을 있었는데 마지막에 잠들기 전까지 계속 그렇게 잘 놀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낮잠을 한 번도 안 자고 오후 4시 정도까지 그랬던 거다. 서윤이도 바깥바람을 쐐서 기분이 좋았나.
난 목요일 이후로 허리가 계속 아프다가 오늘 아침부터는 좀 멀쩡해졌다. 약간의 뻐근함은 느껴졌지만 자세를 곧게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다. 반나절 만에 다시 심해졌다. 푸쉬카에 앉은 아내를 신나게 밀어주겠다고 속도를 내서 달렸는데, 순간 통증이 올라왔다. ‘깃털같이 가벼운’ 아내를 조금 밀었다고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내 허리가 많이 낡았구나. 그랬구나.
덕분에 아내가 평소보다 더 많이 움직였다. 상가 앞 광장에서도 아내가 아이들과 얼음땡을 하며 뛰었다. 웬만하면 내가 아무래도 아내보다는 더 재밌게 논다. 체력이 되니까. 얼음땡만큼은 아니라는 걸 오늘 알았다. 사실 난 소윤이, 시윤이와 하는 얼음땡이 너무 재미가 없다. 그래서 몰입을 하지 못하는데, 아내는 엄청 재밌게 뛰어다녔다. 그것도 오랫동안. 애들도 무척 즐거워했다. 앞으로 얼음땡은 아내에게 양보해야겠다.
차 타고 어디 안 가고 동네, 아니 동네도 아니지. 아파트 안에서 노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무엇보다 오고 가는 데 시간과 체력을 쓰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물론 매번 이렇게 보내면 좀 지루하겠지만,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느껴지는 안락함과 안도감은 거부하기 어려웠다.
3시간 정도 실컷 놀고 나니 꽤 묵직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노는 걸 마치고 저녁 일상 준비(?)에 돌입했다. 아내가 저녁에 뭘 먹을지 이것저것 말하다가 갑자기 얘기했다.
“그럼 치킨 먹을까?”
역시. 부부는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어제 나의 마음을 읽었나 보다. 치킨 사러 가는 길에 커피도 한 잔씩 샀다. 시윤이는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아주 푹 잤고, 소윤이는 무척 졸려 보였지만 역시나 자지 않았다.
아침은 늦었지만, 점심을 거른 셈이었고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어서 평소보다 빠른 시간에 저녁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제 따로 살을 발라줄 필요가 없었다. 알아서 뼈도 척척 발라가며 다리도 뜯고 날개도 뜯고 그랬다. 애들은 아내만큼 먹었다. 물론 아내가 평균보다 적게 먹긴 한다.
온라인 모임이 끝날 때까지 애들도 안 잤다. 서윤이도 당연히 깨어 있었는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그랬다. 잘 웃고, 잘 놀고, 잘 먹고. 모임도 끝나고, 애들도 다 재우고 나니 피로가 한 뭉텅이었다. 애들 재우러 들어간 아내는 결국 한숨 자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