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1(주일)
오늘 아침도 애들이 훨씬 부지런했다. 분명히 처음 시계를 봤을 때는 ‘아, 아직 얼마 안 됐네’였는데 어느새 ‘뭐야. 벌써 이렇게 됐나?’가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배가 고프다며,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나와 아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와 나는 느긋하게 누워 있다가, 일어난 뒤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여보. 나 내일 아침에 머리 감아야 돼”
아침만 되면 머리고 뭐고 이불 속 5분이 왜 그리도 좋은지. 짧은 5분은 언제 그렇게 빨리 모여 50분이 되는지. 그래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름 부지런히, 알아서 움직여 주니 고맙다. 서윤이가 제일 힘들다. 크게 숨을 고르고 한판 붙자는 심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옷 갈아입는 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건지. 최대한 울음이 터지지 않도록 비위를 맞춰 가며 옷을 갈아입히느라 진이 다 빠진다. 팬티형 기저귀를 입히니 다리에 자국이 난다고 밴드형 기저귀로 바꿔줬는데, 덕분에 환복 난이도가 구천구백 배 상승했다. 그래도 늦지 않고 제시간에 출발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예배에 보내면서 다시 한번 당부했다. 예배 ‘잘’ 드리고 오라고. 어제 자기 전에도 한 주 동안 성경 읽으며 느낀 걸 애들한테 이야기해줬는데, 얼마나 마음에 안착했는지 모르겠다. 아직은 심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열매가 안 보여도 열심히 던지고 심을 생각이다.
예배를 마치고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아내에게 갑작스럽게 제안을 했다.
“여보. 햄버거 먹을래?”
“아, 그럴까?”
아내의 대답에서 ‘난 별로 생각이 없는데’를 읽었다. 원래 아내는 햄버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면. 여보는 이삭 토스트 먹던가”
“그럴까?”
비슷한 대답이었지만 숨겨진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이삭 토스트는 ‘너무 괜찮지’가 느껴졌다. 애들은 집에 가서 밥을 차려 주려고 하다가, 혹시 애들도 토스트가 먹고 싶은지 물어봤다.
“소윤아, 시윤아. 엄마는 토스트 먹을 건데 너네도 먹을래? 아니면 집에 가서 밥 먹을래?”
“토스트 먹을래여”
둘 다 토스트를 먹겠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차 안에서, 집에 가는 길에 이미 다 먹고 애들은 집에 와서 먹었다. 이제 뭘 좀 아는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식탁에 앉아서 뭔가를 먹는 걸 보고는 자기도 달라고 난리였다. 식탁 끝을 손으로 잡고 매달려 서서 ‘으으’ 같은 소리를 낸다. 원래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아기과자나 바나나 같은 걸로 대체 가능할 때가 있고 끝까지 언니와 오빠가 먹는 ‘그걸’ 달라고 할 때도 있다. 다행히 오늘은 쉽게 포기했다.
“아빠아. 나중에에 동물 영상 또 보자여어”
“동물 영상 보고 싶어?”
“네에”
“그래 보자”
“언제여어?”
“지금”
동물 다큐멘터리를 말하는 거였다. 못 볼 이유도 없었다. 유해한 영상도 아니고. 지난번에 봤을 때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재미도 있고 유익하고. 오늘은 바다에 사는 동물이 나오는 편을 봤다. 정말 신기했다. 엄청난 수의 멸치 떼, 떼로 몰려다니는 상어 무리 등을 보며 연신 감탄했다. 나도 애들도. 정말 재밌었다. 재밌었는데, 너무 졸렸다. 어느 순간 고개가 뒤로 젖혀졌고, 조는 게 아닌 자는 걸로 돌입했다. 50분가량의 영상이 끝날 때까지 푹 잤다. 중간에 코 고는 소리도 들렸고, 왜 자냐고 깨우는 소윤이 소리도 들렸다. 같이 뭐 보는데 옆에서 자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인 걸 아니까 미안했지만, 그래도 졸린 걸 어찌하리. 정신을 차리고 나서 개운함을 느낄 정도로 푹 잤다.
영상을 다 보고 나서는 우노도 한 판 했다. 시윤이가 실수하는 게 귀여워서 아내랑 나랑 막 웃었는데 시윤이는 그게 기분이 안 좋았나 보다. 왜 웃냐고 입을 삐죽거리더니 눈물까지 보였다. 놀리려고 웃는 게 아니라 실수하는 게 재밌고 귀여워서 웃은 거라는 걸 한참 해명했다. 몸소 실수를 재연하며 시윤이를 웃기기 위해 노력했다. 시윤이의 감정선이 굉장히 섬세하다는 걸 부쩍 많이 느낀다. 둘째라 마음이 많이 말랑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눈물도 많고 감성도 풍부하다.
오늘도 축구장에 데리고 갔다. 또래 언니와 동생도 온다고 했더니 바로 따라나섰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내가 서윤이랑 둘이 남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언니, 오빠라도 있어야 엄마를 향한 관심이 잠시라도 사라지니 그게 좋은 건지. 아무리 언니와 오빠가 동생에게 잘 해줘도 어쨌든 아내에게는 챙겨야 할 자녀니, 없애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아내가 잠든 서윤이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우리가 나가고 바로 재우러 들어왔는데 거의 2시간 동안 안 자다가 방금 전에 잠들었다고 했다. 핵심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진짜 셋째의 위력이다. 화가 안 나고 너무 귀엽넹”
이게 진짜다. 애가 셋인 집이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면, 대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힘들고 안 힘들고는 집마다 차이가 있지만, 모든 걸 무력화시키는 셋째의 신비와 위력은 다들 인정한다. 아내와 나도 다르지 않고. 특히 나는 그 위력 앞에 더 무력화되었고.
집에 돌아와서 소윤이와 시윤이 샤워를 시키고 바로 저녁을 먹었다. 아내는 우리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저녁을 차렸다. 잡채, 감자볶음, 김치찌개, 거기에 엄마와 아내를 향한 찬사를 곁들이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아내의 수고는 저녁이 되면 피로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다. 아내는 오늘도 재우러 들어갔다가 잠이 들었다. 엄청 늦게, 보통 아내와 내가 자러 들어가기도 하는 시간에 다시 나왔다.
“하아. 허무하다. 11시 30분이라니”
한참 잠들어도 금방 깨서 나오더니 누적된 피로가 한계치에 다다랐는지, 어제오늘 계속 탈출에 실패했다. 단유를 아쉬워하는 아내의 심정은 십분 이해가 되지만, 하루빨리 단유와 함께 분절 없는 밤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