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도 되고 싶고 누나도 되고 싶고

21.04.08(목)

by 어깨아빠

아내랑 아이들이 간만에 엄청 늦게까지 잤다고 했다. 아내야 아이들만 협조하면 언제든 늦게까지 잘 준비가 되어 있다. 늘 아이들이 허락해 주지 않으니 못 잔 건데 오늘은 첫째부터 막내까지 다 함께 늦게 일어났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그간 쌓인 피로가 많긴 했나 보다. 늦게까지라고 해도 고작 9시였지만, 대부분 7시 언저리에 하루를 시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이례적인 시간이었다.


아내는 오늘도 바빴다. 많은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오늘 꼭 해야 하는 일 하나가 있었다. 우체국에 가서 등기를 부쳐야 했는데 오늘이 기한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하루 종일 집에서 늘어져 있는 것 같아도 막상 들어가 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게 육아인의 하루다. 거기에 별 거 아니더라도 뭔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마음은 몇 배 더 바빠진다. 아내에게 물어본 건 아니고 그냥 내 추측이다. 가끔 주말에 겪는 심정이기도 하고.


날씨가 좋아서 밖에 나갈 맛이라도 나니 다행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나간 김에 바람도 쐬고 놀이터에도 가고 그랬다고 했다. 밖에 나갔을 때의 아이들 사진이 별로 없는 걸로 보아, 꽤 정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요즘은 시윤이가 만만치 않은 체력, 감정 소모를 유발한다고 했다. 짜증이나 분노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낼 때가 종종 있다고 했다. 물론 아직 다섯 살이니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지금 상황 자체가 시윤이에게 아쉬울 만하기도 하다.


시윤이는 요즘 한동안 끊었던 ‘손가락 빨기’를 다시 시작했다. 잘 때 무의식중에 빨기 시작하더니 이제 낮에도 숨어서 빨 때가 있다고 했다. 오랜 시간 금연했던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흡연을 하는 것처럼. 위로는 뭐든 자기보다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누나가 있고 아래로는 존재 자체로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은 동생이 있고. 누나처럼 칭찬받고 싶어할 때도 많고, 동생처럼 아기가 되고 싶어할 때도 많다. 최대한 시윤이의 마음을 잘 챙겨주려고 노력하지만 낮에 아내 혼자 있을 때는 현실적인 여건이 빡빡할 때가 많다. 사실 주말에 내가 같이 있을 때는 좀 나을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때도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끼인 둘째’의 벗을 수 없는 설움이랄까. 그래도 작년 이맘때의 시윤이를 떠올려 보면 정말 많은 면에서 ‘성숙’한 게 보인다. 시윤이뿐만 아니라 소윤이도 마찬가지고. 내년에도 아마 그렇게 느낄 거다. 그러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아내의 수고가 안쓰러울 뿐이다.


퇴근하니 아내는 분주하게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분주함 속에 묘한 여유가 느껴졌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아내에게 말을 했다.


“여보. 오늘 나 나가는 거 알고 있지?”

“어? 어, 어. 알아. 나 알았는데 까먹었다. 하아”


뭔지 안다. 아는데 까먹은 거. 아내는 솥밥을 만들고 있었다.


“아, 여보 주려고 이거 만든 건데 괜히 만들었네”

“애들이랑 여보도 먹으면 되지 뭐”

“그렇기는 한데”


남편에게 한끼라도 집밥을 먹이려는 아내의 수고가 늘 고맙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냥 간단히 계란밥이나 차려서 먹였을 텐데, 다소 헛수고였다는 의미였다. 나중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가 얘기해 줬는데, 소윤이랑 시윤이가 밥을 엄청 잘 먹었다고 했다. 아내가 잘 먹는 거 보니까 기분이 좋다고 말했더니 소윤이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했다.


“엄마. 우리 솥밥 안 만들어 줬으면 어쩔 뻔했어요"


여보, 조금만 힘내. 주말이 머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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