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할 틈 없이 바쁜 이유

21.04.07(수)

by 어깨아빠

어제 그렇게 늦게 잤는데, 애들은 ‘고작’ 여덟 시 조금 넘어서 깼다고 했다. 한 열 시까지 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데. 하여간 우리 애들은 다 잠이 없다. 갓 돌을 넘긴 막내 녀석도 마찬가지고.


아내는 오늘도 바빴다. 아이 셋과 함께면 집에 가만히 있어도 밖으로 나가도 바쁜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집에 있는 건 끝없는 집안일과 아이들의 요구에 허덕이느라 바쁘다면, 밖으로 나가는 건 정해진 시간 안에 셋을 준비시켜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어떨 때는 차라리 수백 마리 양을 치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아무튼 아내는 오늘도 홀로 셋을 준비시켜서 밖으로 나갔다. 아침부터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카톡 하나도 주고받지 못했다. 보통은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한 번 정도는 연락을 하는데 오늘은 서로 바빴다. 점심 먹고 나서야 아내에게 카톡을 했다. 아내는 답장 대신 전화를 했다.


“애들은 괜찮았어? 말 잘 들었어?”

“어, 뭐 그런 편이었어”


차에서 전화를 받은 거라 애들도 듣고 있으니 말을 자제하는 느낌이었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아주 밑바닥은 아니었으되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시간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오전부터 시작된 아내의 분주함은 나의 퇴근 때까지도 이어졌다. 아내는 저녁 준비하느라 바빴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집에 돌아온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서윤이는 거북이 등딱지처럼 아내에게 업혀 있었다. 날 보며 웃기도 하고 장난도 쳤지만, 어디까지나 ‘엄마 등에 업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얘기였다. 내가 안으려는 시늉만 해도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싫으면 고개 젓고, 음악 나오면 몸 흔들고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배워 오는 걸까.


저녁 반찬은 돼지불고기였다. 아내가 바쁜 이유가 있다. 웬만한 건 직접 만드니까. 돼지고기 사서 갖은 야채를 넣고 양념도 직접 만들어서 볶는다. 물론 맛도 일품이고. 이 정도 질의 저녁 반찬을 만들려니 당연히 바쁘다. 얘기를 들어 보면 낮에도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융숭한 대접을 하는 날도 많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참 복받은 아이들이요, 나도 참 복받은 남편이다. 아, 서윤이도.


서윤이는 저녁 먹고 기분이 좀 괜찮아서 나랑 잘 놀다가,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다. 정말 갑자기. 자기 딴에는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농담 따먹기 하다가 갑자기 니가 나랑 군번이냐며 정색하는 군 시절의 부사관처럼 갑자기 돌변한 느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밥을 먹고 씻는 동안 대차게 울어댔다. 안아줘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소윤이가 서윤이한테 서운한 감정을 한 번씩 표현할 때가 있다. 열심히 놀아 주고 달래주는데도 언니를 거부하며 울 때 그렇다. 거의 뭐 집이 떠나갈 정도로 울어대니까 그럴 만도 하다. 목소리는 좀 카랑카랑해야지.


자정 무렵에 한 번 더 경험했다. 자정 알람처럼 그 시간만 되면 칼같이 깨서는 들어오라고 운다. 내가 안아주면 더 울고. 아내에게 가면 0.3초 만에 그치고. 얼마 전에 소윤이가 이런 얘기를 했다.


“아빠. 예전에는 우리가 엄마는 나가고 아빠랑 잔다고 하면 엄청 울고 그랬잖아여”

“그래, 맞아. 그랬지”


소윤이, 그러니까 한 일곱 살 정도 돼야 아빠도 좋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걸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