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3(화)
아침부터 싱크대 앞에 앉아 슬프게 울고 있는 시윤이 사진이 도착했다.
“서윤이가 드럼 스틱 휘둘러서 얼굴 맞음”
그러고 보니 오른쪽 뺨이 조금 빨갰다. 우는 건 드럼 스틱에 맞아서 그런 게 아니라, 혼나서 우는 거라고 했다. 잠시 후에는 서윤이 사진도 왔다. 서윤이는 이마가 빨갰다.
“아일랜드 옆에 서 있다가 그대로 박음”
서기와 걷기 능력이 일취월장했지만, 그만큼 자신감이 넘치다 보니 자주 넘어진다.
또 잠시 후에는 나란히 앉아 웃고 있는 시윤이와 서윤이 사진을 받았다. 일하느라 대충 훑어보고 나중에 집에 가서 자세히 볼 때가 많지만, 가끔은 아내가 보내준 사진을 한참 쳐다보게 될 때가 있다. 환하게 웃는 ‘시서 남매’의 사진을 보니, 또 머나먼 미래를 떠올렸다. 내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어느 날, 이 사진을 보면 얼마나 흐뭇하면서도 그리울지. 애들이 크는 게 아쉽지만 좋은 점도 있다. 이제 소윤이는 ‘아빠’에 관한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아빠의 모습은 남지 않아도 아빠와 보낸 시간, 아빠의 느낌은 기억이 날 거다. 나만 기억하는 시간을 보내고,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시간에 진입했다는 기쁨과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아내는 카카오 그룹콜로 기도 모임을 한다고 했다. 집중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나는 그룹콜이라는 걸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참 어려울 것 같다. 아이 셋을 곁에 두고 나름 심도 있는 대화와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는 게. 설상가상으로 어디선가 공사를 하는지 드릴 소리가 아주 심하게 들린다고 했다.
저녁에는 내 목장 모임이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외출복을 입고 있길래 어디 나갔다 왔나 싶었다.
“어디 나갔다 왔어?”
“아니여. 나가려고 했는데 시윤이가 옷을 제대로 안 입어서 못 나갔어여”
“진짜?”
시윤이는 민망한지 능청스럽게 웃었다.
“시윤아. 왜 옷을 제대로 안 입었어”
“몰라여어”
아마 또 뭔가 심사 뒤틀려서 짜증을 내면서 해야 할 걸 안 했을 거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외출이 막힌 소윤이는, 당연히 울었다고 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소윤이를 생각해서라도 웬만하면 참고 원래 계획대로 진행한다. 아내든 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출 계획을 철수했다는 건, 한편으로는 시윤이가 얼마나 아내를 열받게 했는지 증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저녁은 오므라이스였다. 아내는 계란 지단 위에 케첩으로 장식(?)을 했다. 소윤이의 계란 위에는 ‘소윤’을 써 줬고, 시윤이의 계란 위에는 ‘하트 사람’을 그렸다. 내 계란 위에는 하트를 그렸던 것 같다. 식사 기도를 마치자마자 무자비하게 ‘케첩 그림’을 헤집었다. 소윤이는 엄마가 써 준 글씨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고, 피해서 밥을 떴다. 목장 모임도 있고 배도 고프고 해서 정신없이 숟가락질을 했는데, 너무 하트에 대한 감상이 없었나 싶기도 했다.
“소윤아. 얼른 먹어. 그렇게 글씨만 남기지 말고. 엄마가 그러라고 써 주신 거 아니잖아”
괜히 소윤이에게 부지런한 식사를 종용했다. 빠르게 진행한 덕분에 목장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아내와 아이들이 방에 들어갔다. 아내가 방에 들어가기 전에 애들이 듣지 못하게
“여보. 오늘도 나갔다 와”
라고 말했다. 목장 모임을 한창 진행하고 있는데도 아내가 나오지 않았다. 오늘도 잠든 건가 싶었는데,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내가 나왔다. 아내는 작은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목장 모임을 하는 나를 향해 소리 없는 인사를 건네고 집에서 나갔다.
아내는 꽤 늦게 돌아왔다. 카페는 10시까지인데, 그 시간을 훌쩍 넘겼다.
“여보. 어디 있었어?”
“나? 차에”
‘차’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아늑하다. 캄캄한 운전석에 앉아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휴대폰을 보는 그 여유와 게으름이 꽤 매력적이다. 좁은 차 안에 갇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어떤 때보다 자유롭다는 걸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알 거고, 퇴근하고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바로 올라가지 않고 잠시 쉬었다가 내리는 ‘아직 퇴근 중이고 싶은 아빠’들은 알 거다.
아내가 돌아온 지 5분도 안 돼서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보. 여보 냄새가 나나 봐”
“하아. 그러게”
육아인의 장면 전환에 딜레이나 디졸브는 없다. 그냥 딱딱, 때가 되면 무 자르듯 바뀌는 거다. 아내는 후다닥 옷만 갈아입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간 아내가 바로 카톡을 보냈다.
“너무 귀여워. 참 나. 이렇게 깨는데도”
“병이야. 막내병”
도대체 막내가 뭐길래, 이렇게 힘들게 해도 사랑만 받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