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안 되고 아빠는 되는 이유

21.04.14(수)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오전에 외출할 일이 있었는데 취소됐다. 사실 어젯밤에 결정이 됐고, 애들은 오늘 아침에 알게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름대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취소가 돼서 무척 아쉬워했다고 했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달랠 겸 오후에는 어디라도 좀 나가야겠다는, 아내의 막연한 고민이 시작됐다.


아내는 형님(아내 오빠)네랑 시간이 맞으면 형님네 집에 가는 것도 생각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가게 됐다. 장모님한테라도 갈까 고민도 했는데 막상 가려니 귀찮다고 했다. 아내는 결국 원래 오전에 가려던 곳에 가기로 했다. 넓은 야외고 풀과 나무가 많은 곳이라, 약속이 없어도 나들이 삼아 가기에 좋은 곳이긴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나가는 길에 같은 동에 사는, 함께 처치홈스쿨을 하는 가족(아빠는 없었지만)을 우연히 만나서 함께 갔다고 했다.


아내가 찍은 사진을 보니 날도 좋고 자연도 푸르러서 참 좋아 보였다.


퇴근했더니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가 칭찬받을 만한 일이 있다면서 일부러 호들갑을 떨며 얘기했다.


“시윤이는요 아까 다 놀고 집에 가자고 했더니 처음에는 엄청 짜증을 냈지만 바로 금방 엄마의 말을 기억하고 바로 짜증 내는 걸 멈췄어요. 그리고 소윤이는요 아까 나가기 직전에 필사 안 한 게 생각나서 물론 기쁘고 즐겁게 한 건 아니지만 옷까지 다 입었는데도 다시 앉아서 필사를 하고 나갔어요”


진짜로 둘 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들이었다. 진심에 과장을 더해 한 명씩 칭찬의 말을 아낌없이 날렸다. 둘 다 멋쩍은 듯했지만, 기분은 좋은지 환하게 웃었다. 매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얻는 유익이 이런 거다. 어제의 소윤이, 시윤이가 어느 정도인지 제법 정밀하게 아니까 오늘의 소윤이, 시윤이가 조금만 나아져도 얼마든지 후히 칭찬할 수 있다. 물론 칭찬을 위한 인고의 시간은 아내가 견디고 있으니, 내가 나서서 공을 취할 바는 아니다. 어쨌든 소윤이와 시윤이도 매일 조금씩 잘 크고 있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저녁 반찬은 돈까스였다. 다 준비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시윤이가 꽤 긴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했다.


“그래. 읽자”

“아빠아. 아빠느은 왜 다 읽어줘여어?”

“아빠는 퇴근하고 오면 아주 잠깐 너희랑 놀잖아. 그러니까 그렇지”


시윤이의 말속에는 ‘엄마는 읽어달라고 하면 못 읽어준다고 할 때도 많은데 아빠는 왜 다 읽어준다고 하느냐’는 뜻이 숨어 있었다. 아이 셋이랑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물리적으로 책 한 권 읽어줄 시간이 안 날 때도 많고, 설령 시간이 확보되더라도 그때는 이미 책 한 권 읽어줄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버린 뒤일 때도 많다.


책을 읽고 나서도 시간이 남길래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우노를 하자고 제안했다. 서윤이가 너무 기분 좋게 거실을 활보해서 그게 좀 걱정이긴 했지만(우노를 하느라 자기만 혼자 두는 걸 알아차리면 분명히 기분이 안 좋아질 테니) 카드 한 장을 서윤이에게 쥐여주고 부디 한 판 정도의 시간만 버텨 주기를 바라며 시작했다. 다행히 서윤이는 제대로 훼방을 놓지는 않았다. 이따금씩 끼어 들려고 하긴 했지만, 아예 판을 뒤엎을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즐겁게 한 판을 마쳤고, 저녁 준비도 딱 완료됐다.


반찬은 돈까스였다. 양이 무척 적어 보였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원래 돈까스를 워낙 좋아해서(애들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 하는 거다) 본능대로 먹으면 아내나 아이들은 손도 못 댈 양이었다. 역시나 소윤이와 시윤이도 엄청 잘 먹었다. 난 젓가락질에 ‘느리게’ 효과를 걸었다. 자체적으로.


“여보. 많이 먹었어?”

“어. 많이 먹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튀길걸”

“얼마나 튀긴 건데?”

“두 장”

“아, 그렇구나”


프라이팬이 작아서 한 번에 두 장 이상은 튀기기 힘들고, 더 튀겨서 내기에는 모두가 너무 배가 고팠다. 아내의 양 조절 실패가 아니라 환경의 실패였다. 덕분에 강제 소식하고 좋지 뭐(누가 들으면 진짜 소식인 줄 알겠다. 내 기준으로 소식일 뿐, 다른 이와 비교하면 대식).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아내는 애들 재우러 들어가면서 카톡을 보냈다.


“여보. 자전거라도 타고 와용”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가고 싶기도 했지만, 귀찮고 힘들었다. 자전거 대신 설거지를 했다. 유튜브를 보며 설거지를 하는 것도 뭐 나름 괜찮은 시간이다. 설거지는 의식하지 않고 하면 괜찮다. 코딩이 입력된 로봇처럼 당연히 설거지를 하면 되는데, 소파에 앉아 설거지를 인식하는 순간, 세상에 그렇게 귀찮은 일이 없다.


‘설거지하면서 유튜브 보는 게 아니라, 유튜브 보는 김에 설거지하는 거다’


라고 자기 최면을 걸며 열심히 그릇을 닦았다.


아내는 오늘도 꽤 한참 있다가 나왔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내는 이번 주에 빵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내적 다짐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선언했다고 했다. 오늘도 빵은 없었다. 길어도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 다짐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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