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5(목)
아내와 아이들은 어제 못 간 형님(아내 오빠)네 집에 다녀왔다. 바로 근처에 장모님도 계셨지만, 몸이 안 좋으셔서 같이 만나지는 못했다고 했다. 대신 삼촌, 숙모랑 놀이터에 가서 잘 놀고 온 듯했다. 돌아와서 만난 소윤이, 시윤이의 말과 표정에서 그게 느껴졌다. 시윤이는 삼촌을 만나러 가는 거니까 삼촌이 사 준 모자를 쓰고 갔다며, 자기 나름의 착장 이유를 설명했다.
아내가 출발하기 전에 서윤이가 마스크 쓴 사진을 보냈다. 요즘은 가끔 서윤이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받는 일이 생긴다. 얼마 전에도 어느 카페에서 서윤이에게도 마스크를 좀 씌워달라는 직원의 부탁이 있었다. 뭐 법적으로는 24개월까지는 의무사항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법 이전에 사회 분위기라는 게 있는 거니까. 그걸 가지고 씨름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 뒤로는 마스크를 챙겨 다니는데, 물론 잘 쓰지는 않는다. 팔과 손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능력이 많이 발전한 서윤이는, 손쉽게 마스크를 벗어낸다.
오늘은 저녁에 나가야 했다. 아내가 혹시 늦게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빨리 온다고 했다. 장모님이 편찮지 않으셨으면 저녁을 먹고 왔을지도 모르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나 보다. 잠깐 집에 들러서 반찬만 받아 왔다고 했다. 내가 아내와 아이들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아내는 먼저 나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애들이 보고 싶기도 했고, 뭔가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얼굴 보고 간다고 해도 딱히 아내에게 도움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의 처신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게 아니겠나. 말이라도 한마디 보태면 좀 낫고 그런 거지 뭐.
소윤이와 시윤이의 저녁 식탁을 차려주고 나왔다. 장모님이 싸 주신 반찬을 식판에 잘 담아 준 것뿐이었다. 아내는 괜찮으니 얼른 가라고 했다.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집에서 나왔다. 마음은 그럴 리 없겠지만, 언제나 아무렇지 않은 듯 기분 좋게 배웅하는 아내에게 감사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혹시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봤다. 당연히 생활필수품 따위를 묻는 게 아니었다. ‘스트레스 해소 혹은 욕구 충족을 위해 필요한 빵’ 같은 필요한 건 없는지 묻는 거였다.
“어, 괜찮아. 아까 빵 좀 사 왔어”
아내는 홀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빵,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애들은 금방 잤어?”
“어, 뭐 비교적”
“기분 좋게?”
“어, 기분 좋게 잤지”
서윤이는 오늘도 자정 무렵에 깨서 울었지만, 아내는 기꺼이 기쁨으로 서윤이를 다시 재웠다. 나야 뭐 아내에 비하면 굉장히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서윤이랑 사귀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24시간 내내 단 1초도 분리되지 않는 아내도, 서윤이는 마냥 예쁜가 보다. 단유의 시간이 다가올수록(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아내가 '곧 할 거'라고 얘기만 해서, 가까이 왔다는 정도만 안다) 젖 먹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고 자주 말한다.
아이들, 남편의 '노는 시간'을 위해 기꺼이 자기를 내어 바치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젖을 먹이느라 고생하면서도 기쁠 수 있는 아내는, 이제 나랑 정말 다른 영역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