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좌우하는 여행의 질

21.04.17(토)

by 어깨아빠

처가 식구들과 1박 2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말이 여행이지 그냥 독채 숙소 잡아서 하루 자고 오는 거였다. 원래 차로 1-2시간 거리의 숙소를 잡았다가 예약을 놓치는 바람에 아주 가까운 곳으로 바뀌었다. 너무 가까우니 여행 기분이 좀 덜한 느낌이었지만, 오고 가는데 부담이 없다는 아주 큰 장점도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역시나 며칠 전부터 오늘을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날씨가 안 좋은 게 흠이었다. 비가 내리고 우중충했다. 춥기도 했고. 애들이랑 밖에서 놀 날씨는 아니었다.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날씨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숙모랑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게 너무 신나는 일일뿐이었다.


숙소 근처의 식당에서 만났다. 우리 식구가 조금 늦게 갔고 따로 앉아서 밥을 먹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형님네 부부는 먼저 드시고 계셨다. 아내와 나는 두려웠다. 어젯밤, 눈물 젖은 쭈꾸미를 먹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다.


“여보. 서윤이 괜찮을까”

“그러게. 오늘은 좀 안 울고 먹었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면 두려울 이유가 없지. 아내와 나의 근거 없는 희망은 무참히 짓밟혔다. 어제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아내는 서윤이를 업었고, 서윤이도 어제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나마 어제보다는 좀 덜한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기특하게도 소윤이와 시윤이도 어제처럼 알아서 잘 먹었다. 게다가 소윤이는 아내 옆에 앉아서, 우는 서윤이에게 치즈를 먹이는 역할까지 담당했다. 자기 먹을 거 떠서 채 입에 넣지도 못한 채로 들고 동생에게 치즈를 넣어주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했다.


“와. 소윤아. 진짜 대박이야. 소윤이 덕분에 엄마, 아빠가 그나마 편하게 먹었어. 소윤이가 정말 중요한 일을 해주네”


표현을 극대화하긴 했지만, 진심이었다. 소윤이의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하지만 실제로 도움도 많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아내가 정말 편하게 먹은 건 아니었다. 한 10kg 짜리 가방을 등에 지고 허리를 꽉 조른 상태에서 밥을 먹는 느낌을 상상해 보면, 옅게나마 아내의 기분을 상상할 수 있다. 난 밖에서는 서윤이를 업고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숨겨왔던 나의 복부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내와 나는 조금 두려웠다. 오늘도 어제처럼 계속 그렇게 울어대면 어쩌나 싶었다. 부디 평안한 여행이 되길 바라지만, 물론 이것도 아무 근거는 없었다. 그야말로 그냥 바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아버지 차를 타고 가도 되냐고 물었다. 흔쾌히 허락하고 조금 후회했다. 카시트를 꺼내는 게 아주 조금 귀찮았다. 그래도 기꺼이 장인어른 차로 카시트를 옮겨줬다. 언니와 오빠가 없어진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서윤이는 크게 신경 안 쓰는 듯했다. 숙소에 가기 전에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는데, 서윤이는 예상보다 순했다. 일단 계속 울어 젖히지 않았다. 엄마와 멀어지면 당연히 울음 시동을 걸었지만, 엄마가 가까이에 있으면 안아주지 않아도 괜찮기도 했다. 아주 가끔은 엄마랑 떨어지기도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예 아내와 내 옆에 붙어 있지를 않았다. 계속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과 숙모 옆을 지켰다. 앉을 때도 나갈 때도 움직일 때도.


숙소 근처, 하다못해 마당에도 애들이 나가 놀만한 곳은 없었다. 날씨도 바람이 세차게 불고 추워서 계속 숙소에만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조금도 지겹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았다. 놀아줄 사람이 그렇게 많았으니까. 서윤이도 걱정과는 다르게 나름 잘 지냈다. 숨만 쉬어도 웃어주고, 박수를 쳐주는 사람이 네 명(아내와 나 제외)이나 있는 게 분명히 상관이 있을 거다.


오늘 아침에도 무척 일찍 일어나서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무척 피곤했지만, 일찍 자지 않았다. 놀 만큼 실컷 놀고 아주 늦게 자러 들어갔다. 마침 장인어른의 생신이라 소윤이와 시윤이는 편지를 써 왔고, 직접 읽어 드렸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드리고 난 뒤에는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가 춤을 추며 축하 공연을 펼쳤다. 자기 나름대로 콘티가 있는 듯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소윤이, 아직은 뭘 해도 어설픈 시윤이, 언니와 오빠를 보고 흥이 올라 그냥 흔드는 서윤이를 보며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많이 웃으셨다. 형 만한 아우 없고, 손주 만한 자식 없는 거 아닌가 싶다.


숙소에 2층 침대가 놓인 방이 있었고 거기에서 형님네 부부가 자기로 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도 거기서 자겠다고 했다. 시윤이는 처음에는 엄마, 아빠랑 잔다고 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 조합인가. 삼촌, 숙모와 함께, 2층 침대까지. 물론 바닥을 구르며 자는 녀석들이라 2층은 위험할 것 같아서 1층에 누우라고 했다. 재우는 것도 숙모가 들어가서 재웠다.


한 20-30분 지났을까, 애들 숙모가 방에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직 안 잔다고 했다. 피곤해서 금방 잠들 줄 알았더니 너무 신났나 보다. 내가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소윤이는 생각보다 겁이 많다. 집에서 잘 때도 아내나 내가 먼저 나가면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든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짧긴 해도 어쨌든 여행이니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고 싶어서 들어갔다. 시윤이는 누나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이제 얼른 자. 아빠가 잘 때까지 기다려 줄 테니까. 대신 떠들고 장난치면 나갈 거야”


두 녀석이 서로 꼭 붙어 자는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거나 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나도 잠든다. 잠들지 않으려면 뭔가를 해야 하고, 그 상황에서는 휴대폰이 유일하다. 게임을 하며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자러 들어가기 전에, 서윤이를 재우러 다른 방으로 들어갔는데 소식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깨우는 건 위험하니 전화를 걸었다. 한 대여섯 번 울리더니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가…”


하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잠시 후 아내가 나왔다.


다 같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다가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아내와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자는 서윤이를 보며 무음의 호들갑을 나눴다. 쌔근쌔근 자고 있는 막내를 향한, 어디에서도 그렇게 티 내지 않고 참다가 하루의 마지막에 폭발시키는 애정 표현이랄까. 소윤이와 시윤이도 옆에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두 녀석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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