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8(주일)
아예 떨어져서 잤기 때문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몇 시에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엄청 일찍 일어났겠지. 우리 방에서도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났다. 아마 서윤이도 먼저 일어나서 나간 것 같다. 아니면 누군가 데리고 갔거나.
아침에는 굉장히 바빴다. 체크아웃 시간이 되기 전에 아침도 먹고, 예배도 드리고, 짐 정리도 해야 했다. 1박 2일 여행이 다 그렇긴 하지만, 말이 1박 2일이지 실제로는 1박 1일 느낌이었다. 그래도 갈 때가 되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게 다시 한번 다행스러웠다.
어제랑 다르게 날씨가 아주 좋았다. 처가댁 근처 공원에 가서 시간을 더 보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전히 장인어른 차를 타고 움직였다. 공원 한쪽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바람을 쐬다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동네에는 없는, 동네 아니라 다른 곳 어디에도 흔하지 않은 놀이터가 하나 있어서 올 때마다 가곤 한다. 나만 소윤이, 시윤이와 놀이터였고 나머지는 원래 있던 자리에 있었다. 거기는 서윤이가 있으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얼굴이 벌개지고 땀이 조르륵 흐를 정도로 열심히 놀았다. 쉬지 않고 계속 달리고 오르고 타고. 동네 놀이터보다 오히려 편한 것도 있었다. 동네 놀이터에서는 내가 계속 뭔가 해줘야 하는데, 거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잘 노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한 번씩 눈 마주치면 손 흔들고. 꽤 한참 놀았다.
멀지 않은 곳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 가서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장인어른, 장모님과 앉았다. 다행히 서윤이는 여전히 기분이 괜찮았다. 밥 먹을 때도, 최소한 울지는 않았다. 서윤이의 입에 계속 뭔가를 넣어주느라 아내가 굉장히 분주했다. 서윤이랑 마주 보고 앉은 나도 그렇게 정신이 없었는데, 아내는 오죽했을까 싶다.
“맛있긴 했는데 뭘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내의 정확한 한 줄 평이었다.
밥 먹고 나서는 다시 아까 그 공원 쪽 카페에 가서 커피를 샀다. 카페 앞 잔디(아까 그 공원의 끄트머리)에 다시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서윤이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냐면 장인어른이나 장모님 무릎에 앉아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울지도 않고. 아주 흔하지 않은 일이다.
시윤이가 킥보드를 꺼내 달라고 했는데 조금 귀찮아서 안 된다고 했다. 물론 시윤이에게는 귀찮다는 이유 대신,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킥보드 탈 만한 곳이 아니고, 킥보드 타지 말고 그냥 뛰어다녀도 되고, 어차피 금방 갈 거고. 시윤이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서 눈에 눈물을 채웠다. 사실 내가 댄 이유가 너무 약하긴 했다. 차에 가서 킥보드를 꺼내줬다.
드디어 이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미리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는지를 얘기해 줬지만, 그게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울었다. 차에 타기 전에도 울었고 타고 나서도 울었다. 슬프고 우울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앉아 있을 것처럼 하더니 시윤이는 바로 잠들었다. 소윤이도 곧 잠들었다. 서윤이도 잤고.
“여보. 너무 피곤하다. 나 자도 돼?”
“어, 자”
아내도 잠들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도 모두 자고 있었다. 곤히 자는 걸 깨우는 게 아까워서 나도 눈을 좀 붙였다. 그러고도 한 30분을 잤나 보다. 자는 동안 신호 대기하다가 존 거라고 착각하고, 두어 번 정도 깼다. 숙면은 아니었지만 달콤한 낮잠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목욕을 하고 싶다고 했고, 흔쾌히 준비해 줬다. 사실 애들한테 샤워하자고 말하기 전에 목욕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샤워 얘기를 꺼낸 거였다. 덕분에 요청을 잘 들어주는 아빠가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욕조에서 노는 동안 난 밖에서 서윤이랑 놀았다. 아직 여행의 기운이 남았는지 여전히 기분이 좋았다. 말을 깨우치기 전, 표정과 눈빛으로만 교감하는 시기의 짜릿함이 있다.
애들은 계란밥을 주고 우리는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떡볶이로 방향을 틀었다. 애들 재우고 배달을 시키기로 했다. 이제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와 나의 대화는 웬만한 건 다 알아듣는다. 아내와 나의 대화를 들은 소윤이가 ‘떡볶이를 언제 먹냐’, ‘우리 재우고 먹을 거냐’, ‘왜 재우고 먹냐’ 등의 질문을 던지며 궁금해했다. 소윤아, 너도 나중에 자식 낳아서 키워 보면 안단다. 별 거 아니어도 다 재우고, 내 배우자랑 둘이 조용히 보내는 시간의 달콤함을.
소윤이와 시윤이 둘 다 낮잠을 많이 자서 금방 잠들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다.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며 얘기했다.
“여보. 배달 시켜 놓을 게”
떡볶이가 먼저 도착했고, 그다음 아내가 나왔다.
“애들은? 안 자지?”
“어”
아 참. 그전에, 떡볶이가 도착하기 전에 시윤이가 한 번 나왔다. 똥이 마렵다고 하더니 막상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아빠. 안 나와여어”
라고 했다. 아마 그냥 한 번 나오고 싶어서 핑계를 댄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었다. 생리현상에 관해서는 철저히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함부로 야단치지 않는 게 좋다.
아내와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데 갑자기 소윤이가 기척도 없이 스윽 나타났다. 아내는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나는 아내처럼 놀라지는 않았지만, 움찔했다. 별 이유도 없었다. 왜 나왔냐고 물었더니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소윤아. 나온 김에 화장실 한 번 갔다가 들어가”
아내와 내가 무슨 죄지은 것도 아닌데, 뭐지 이 개운하지 못한 느낌은. 무슨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도 하다가 들킨 것 마냥 괜히 움츠러들었다.
야식이 죄니, 죄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엄마, 아빠가 그 짐 내려놓고 맛있는 것 먹으며 수다 좀 떨겠다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