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0(화)
아침에 아내랑 애들이랑 같이 나왔다. 같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출근길도 함께 했다.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언니네 집에 간다고 했다. 그 이른 아침에 가서 나의 퇴근 시간까지 있을 거라고 했다. 퇴근할 때도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물론 운전은 내가 했지만.
평소에 나가는 시간보다는 조금 늦게, 출근 시간보다는 여유 있게 출발했다. 평소보다 늦게 나가는 만큼 차가 막힐지도 모르니 안전하게 여유를 둔 건데 생각보다 차가 없었다. 덕분에 꽤 일찍 도착했다. 바로 사무실에 들어가기에도 일렀고, 남의 집에 쳐들어가기에도 이른 시간이었다.(평소에도 차에서 시간을 보내다 사무실에 들어간다.) 골목 한쪽에 차를 대고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물론 아내랑 나만. 애들은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아주 쌩쌩했다. 애들이 안 자는데 과연 잠이 올까 싶었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바로 잠들었다. 까딱하면 마지막 알람을 놓칠 만큼 달콤한 잠이었다.
아내에게 커피 한 잔을 얻어 들고 사무실 앞에서 헤어졌다.
“소윤아, 시윤아. 어제 못 보고 잤는데 오늘은 이렇게 아침부터 같이 나왔네? 좋지?”
사실 내가 더 좋았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삭막하기만 했던 출근길에 아내와 아이들이 동행한 게 꽤 힘이 됐다. 퇴근하고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집에서 회사, 회사에서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나 홀로 시간’이 없어지고, 육아의 시간이 이어 붙은 거였다. 그런데도 좋은 걸 보면 역시 난 집돌이인 게 분명하다.
오후가 돼서 아내에게 물어봤다. 퇴근하고 만나서 바로 집으로 갈 건지 아니면 밥이든 차든 먹고 갈 건지. 저녁에 목장 모임이 있는 날이라 빠지려면 미리 정하고 말씀드려야 했다. 곧 아내의 답이 도착했다.
“미리 말씀드리세요”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와 아이들이 다시 사무실 앞으로 왔다. 소윤이 빼고는 다 자고 있었다. 소윤이도 무척 졸려 보였지만, 역시나 버텼고. 사무실 근처에서 밥을 먹을 때 주로 가는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 시윤이는 잠에서 깨는 데 한참 걸렸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뒤에는 막 울면서 짜증을 냈다. 그냥 졸려서 그런 거라 시간이 필요했다. 시윤이는 식당에 앉고 나서 음식이 나올 때쯤 멀쩡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나란히 앉히고 서윤이를 아내와 나 사이에 앉혔다. 아내와 나의 심경이 담긴 자리 배치였다. 다행히 서윤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차에서 내릴 때 내가 안았는데도 울지 않고, 엄마도 찾지 않은 걸 보면 꽤 괜찮은 편이었다. 아기 의자에 앉혀서 과자를 조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먹는가 싶더니 입맛에 안 맞았던 건지 배가 불렀던 건지, 먹지 않고 장난만 치기 시작했다. 뭐 자기 앞에 놓고 장난치는 거야 상관없지만, 자꾸 바닥에 던지니까 문제였다. 던진 거야 나중에 한 번에 치우면 되니까 상관없지만, 자꾸 주워 달라고 하니까 문제였다. 그래도 울지 않고 있어 주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기꺼이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서 떨어뜨린 걸 주워줬다.
식사 막바지에는 한계에 다다랐는지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칭얼댔다. 우리도 거의 다 먹었을 때라 내가 서윤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도 기분은 괜찮았다. 오히려 나랑 장난치면서 웃고 놀았다. 어른이든 애든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건 다 힘든가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생각보다 많이 안 먹었다. 오기 전에 이것저것 간식 겸 군것질을 많이 먹어서 그럴 거라고 했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평소에 비하면 소윤이가 뭔가 차분했다. 다른 말로 하면 약간 힘이 빠져 보였달까. 혹시 몸이 안 좋거나 힘든 거 아니냐고 물어봤지만 그건 아니라고 했다. 아무튼 뭔가 이상했다. 아내나 나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하게 처진 느낌이 있었다.
밥 먹고 근처 카페에도 잠시 들렀다. 머문 건 잠시였는데 가는 과정이 참 험난했다. 주차하고 내렸다가 출구가 없어서 다시 타고 다른 층에 갔다가 자리가 없어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겨우 카페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피로가 몰려왔다.
“여보. 우리 즐거운 거 맞지?”
즐거운 건 맞는데 피곤하기도 엄청 피곤했다. 아내에게는 커피, 아이들에게는 쿠키와 케이크를 사줬다. 서윤이에게는 다시 과자를 건네 봤지만 식당에서보다 유효시간이 짧았다.
“여보. 이제 가자”
지하철역 한 정거장 가는 동안 잠깐 앉았다 내리는 승객처럼, 그렇게 짧게 엉덩이를 붙였다 뗐다.
소윤이는 집에 가는 길에, 정확히 말하면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정신을 못 차리고 졸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자라고 해도 잠이 안 든다고 버티더니, 오늘은 정말 피곤했는지 아내가 그렇게 깨워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 집에 금방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역시나. 외식의 대가는 혹독했다. 집에 와서 애들 씻기고 재우러 들어간 시간이 거의 10시였다. 애들 재우러 들어간 아내는 그대로 잠들었다. 깨서 나오지도 않고 쭉 잤다.
내가 자러 들어갔을 때, 네 식구의 위치가 가관이었다. 자기 위치를 지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서로의 발이 머리를 타격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특히 시윤이의 다리 하나가 서윤이의 가슴 위에 올려져 있었다. 서윤이 인중에 손가락을 대봤더니 숨은 잘 쉬길래 그냥 둘까 하다가 조심스럽게 시윤이를 살짝 옮겼다. 이래도 깨고 저래도 깨는 서윤이니까 그냥 둬도 상관없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어떻게든 불안 요소를 없애 보는 거다. 이래도 깨고 저래도 깨긴 하지만 두 번 깰 게 세 번이 될지도 모르고, 세 번 깰 게 네 번이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