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과 코감기의 계절

21.04.22(목)

by 어깨아빠


아내가 아침부터 전화를 했다.


“여보. 우리 셋 다 열 남”


아내가 말한 ‘셋’은 소윤이, 시윤이, 그리고 아내였다. 서윤이도 언니와 오빠랑 비슷하게 콧물은 줄줄 흘렀는데 열은 없었다. 소윤이가 가장 아픈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시윤이는 열이 난다 뿐이지 굉장히 쌩쌩했는데, 소윤이는 누가 봐도 아픈 사람 같았다고 했다.


아내는 아침 댓바람부터 아이 셋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진찰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소윤이는 만성 비염이 있는 상태에서 급성으로 심해진 거고, 시윤이는 덜 부었지만 붉은기가 보이는 걸로 보아 염증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내는 따로 진료를 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수유중이라 어차피 함부로 약을 못 먹으니까.


병원에 다녀와서도 소윤이는 딱 아플 때처럼 힘없이 누워 있고 그랬는데 시윤이는 쌩쌩하다고 했다. 오히려 시윤이는 의무적으로(?) 아픈 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잘 놀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힘들다고 한다거나. 별의별 걸 다 따라 하는 시윤이의 요즘 모습을 쭉 본 아내와 나에게는 익숙한 광경이다. 누나가 하는 건 뭐든 따라 하려고 한다. 소윤이는 방에 들어가서 자지는 않았다고 했다. 잠은 오지 않지만 기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 베개를 베고 누웠다고 했다.


“뭔가 자꾸 몸이 긴장되네”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 셋 모두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까지 아프면 안 된다는 책임감에 자기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몸과 마음에 바짝 군기가 든 상태랄까.


오후가 되어서 죽을 좀 먹고 났더니 오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했다.


“애들 열은 아직 나는데 되게 컨디션 좋아졌다”


아내는 바로 이어서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를 제시했다.


“티격태격하는 거 보니까”


다투는 것도 기력이 남아야 하는 거다. 뭐 자녀끼리 다투는 것만큼 부모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일이 또 없지만, 어쨌든 조금이나마 힘이 난다는 증거였으니까.


퇴근하고 만났을 때도 소윤이는 정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보다 얼굴이 퀭했다. 그냥 평소의 내 딸 소윤이가 100이라면 오늘 소윤이는 한 30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시윤이는 정상에 가까웠다.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감기가 걸린 목소리였지만 말이나 행동은 평소랑 거의 똑같았다. 아내와 내가 소윤이에게 붙어서 얼마나 힘드냐, 어느 정도로 아픈 거냐 이런 걸 캐물으니 시윤이가 옆에서 얘기했다.


“엄마. 저도 힘든데여어? 저도 코가 막혀서 힘들어여어”


아픔을 팔아서라도 관심을 받고 싶은 둘째의 삶이여.


“그래? 시윤이도 힘들었어? 그랬구나. 시윤이도 약 먹고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면서 시윤이를 세게 안아주니까 또 신나서 깔깔대며 빠져나갔다.


아내는 애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서, 내가 퇴근하기도 전에 저녁을 다 먹였다. 저녁이라고 해 봐야 간단하게 죽이긴 했지만. 아내는 저녁을 못 먹었다고 했다. 그럴 만한 여유도 식욕도 없었을 거다. 애들 재우고 고요한 거실과 마주하면 그때부터 식욕이 샘솟을 테고.


자려고 누운 아이들에게 기도를 해주고 나왔다. 방에서 나오기도 했고 집에서도 나왔다.


“나와서 라면 한 그릇 달리고 있는데 깸. 이놈 자슥”


그때 시간이 8시 30분이었다. 아내랑 아이들이 누운 게 7시 30분이었고. 그러니까 불과 1시간 만에 깨서 엄마의 늦은 저녁을 방해한 거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업고 먹었다고 했다. 이미 끓여서 먹고 있는 라면을 두고 들어가는 것도, 이미 깨서 울고 있는 녀석을 두고 라면을 먹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선택하기 어려웠던 아내의 절충안이었다. 업고 먹기.


가앙서어유운. 꼭 기억해라. 니가 제일 심했어. 뭐냐고 묻지 마. 그냥 제일 심했는데, 제일 관대했다는 것만 알아두렴.


물론 서윤이는 그러고도 한 번 더 깼다. 아내가 먼저 들어가고 난 조금 뒤에 들어갔는데 소윤이 숨소리가 너무 불쌍했다. 그야말로 안쓰러웠다. 코는 꽉 막혀가지고 간신히 입을 벌리고 숨을 쉬는데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할 정도로 거칠었다. 잠깐 옆에 누워서 토닥이는데 너무너무 마음이 짠했다. 그냥 소윤이 옆에서 자기로 했다. 시윤이는 아내가 들어가기 전에 잠에서 깨고 화장실에 다녀온 뒤로 아직 못 자고 있었다.


“시윤아. 시윤이도 아빠 옆으로 올래?”

“네에? 왜여어?”

“그냥. 싫으면 안 와도 되고”

“괜찮아여어”

“그래? 그럼 엄마 옆으로 가서 누울래?”


시윤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바로 아내 옆으로 가서 누웠다. 사실 소윤이 옆에만 누우면 혹시라도 시윤이가 서운해할까 봐 그런 건데, 쓸데없는 배려였다. 아빠 옆은 괜찮고 엄마 옆은 대답이 필요 없고.


눕고 나서도 소윤이 숨소리 때문에 한참 동안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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